철 가공 압연설비 침수, 복구 늦어져 정부 TF 구성… 민관 조사단도 가동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의 완전 복구가 지연되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통상 한 달 치의 재고를 확보하고 있는 산업 현장에선 약 2주 내에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동차, 조선, 가전제품, 건설 등 산업 전반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14일 포항제철소 피해에 대해 “포항 철강산업 피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며 “조선, 자동차, 기계, 건설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차관은 또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의 경우 재가동까지 최대 6개월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 산업부는 ‘철강 수해복구 및 수급점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포스코, 현대제철, 철강협회, 한국무역협회와 첫 회의를 열었다. 산업부는 이번 주 내 민관 합동 ‘철강수급 조사단’을 가동해 국내 수급 현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포항제철소가 재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압연 공장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철을 용도에 맞게 가공하는 압연 설비를 가동하지 못해 실제 철강 제품을 만드는 후공정들까지 멈춰 선 것이다. 포스코는 이날 “압연 설비 복구는 진행 중으로 생산 재개 예정일은 별도 공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철 ‘2열연공장’ 재가동 6개월 걸릴수도” 공급지연 일부에 통보
포항제철 생산차질 후폭풍… 완제품용 압연설비 물빼기 안 끝나
제품 상당수 사실상 독점 공급… 공급 차질 장기화땐 車업계 타격
전기차 생산까지 연쇄피해 우려… “美 견제로 중국산 대체도 어려워”
철강 제품은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쓰는 기본소재지만 워낙 부피가 커 적재공간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약 한 달치 수준의 재고를 확보해 두는 게 통상적이다. 포항제철소가 태풍 피해를 입은 지 15일이면 열흘째가 된다. 2∼3주가 더 지나면 일부 기업들의 철강제품 재고가 바닥날 수 있다는 얘기다. 포항제철소는 지난해 조강(제강 공정에서 나온 철) 생산량이 1685만 t이었다. 한국 전체 생산량의 35%다.
포항제철소 완전 정상화가 늦어지는 건 압연 설비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14일까지도 포항제철소 압연 설비 배수 작업은 90% 정도만 완료됐다. 포스코는 “배수 작업과 지하시설물 점검이 마무리돼야 피해 규모 추산 및 압연 라인 가동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일부 기업들은 포스코로부터 이미 포항제철소 생산 제품의 입고 일정을 지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재고가 2주치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까지 포항제철소 복구 일정이 확정되지 않으면 대체 공급처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후판 수요가 많은 조선업계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국내 조선사 관계자는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일본 쪽에서 후판을 받기로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자동차 업계 우려도 커지고 있다. 포스코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전기강판은 전기차용 모터에 주로 쓰인다. 공급이 재개되지 않으면 전기차 생산까지 연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자동차 부품 소재인 스테인리스스틸이나 와이어를 만드는 데 쓰는 선재 등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면 자동차 산업 전체에 충격이 전해질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중국 견제 때문에 바로 중국산 철강으로 대체하는 것도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다”고 했다.
다수 고객사들 사이에서는 “포스코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급 불균형에 따른 철강제품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