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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 갈등에만 신경… 정작 혁신은 실패”

입력 | 2022-09-15 03:00:00

[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
3부 공정한 혁신 성장의 길〈1〉모빌리티 CEO의 오답노트



이행열 전 KST모빌리티 대표이사가 7일 서울 중구의 한 공유 사무실에서 4년 전에 구상했던 플랫폼 택시 발전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거리에서 손을 흔들며 기다리던 택시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부르는 시대. 모빌리티 플랫폼 앱은 시민의 삶을 바꿨다. 카카오가 2015년 3월 출시한 카카오택시(카카오T)의 등장은 결정적인 순간. 모빌리티 플랫폼 시장은 창업가들에게 새로운 혁신의 무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행열(48)은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한국스마트카드(현 티머니)에서 대중교통 업무를 담당하던 그는 2018년 7월 사내 벤처로 출범한 KST모빌리티(마카롱택시)의 대표로 선임되며 직접 무대에 뛰어들었다. 택시업계와의 갈등으로 휘청거리던 ‘타다’를 지켜보며 업계와의 협력을 추구하는 플랫폼을 지향했다.

하지만 4년 뒤 이행열은 “혁신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토로한다. 사실 지금의 모빌리티 시장을 두고 어느 누구도 ‘혁신’을 말하지 않는다.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데 요금만 올랐다. 택시업계 보호를 내세웠지만 정작 기사들은 택시를 등졌다. 모빌리티에 미래를 걸었던 기업들은 줄줄이 짐을 쌌다. 승자는 없고 모두 패자가 된 시장.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모빌리티 플랫폼 9년 잔혹사… ‘링’만 만들고 ‘룰’ 손놔 모두가 패자


정부, 택시업계 갈등 해소만 급급… 공정경쟁 대책등 운영방안 소홀
“정부, ‘혁신 보호’ 대책 내놔야”… ‘마카롱택시’ 창업 이행열 전 대표
“길거리서 택시 안잡고 앱 호출시대… 요금만 오르고 택시잡기는 별따기
플랫폼들은 짐싸… 혁신에 실패”



돌이켜 보면 2018년 10월이 ‘모빌리티 혁신’의 분기점이었다. 카풀 스타트업 럭시를 인수한 카카오모빌리티는 시범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VCNC는 ‘기사 포함 렌터카’로 불리는 대형 승합차(카니발) 호출 서비스 ‘타다 베이직’을 출시했다. 현행법의 예외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업 형태였다.

택시업계는 즉각 단체 행동에 나섰다. 카풀과 타다 등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다. 서비스 금지를 요구하며 2019년 5월까지 4명의 택시 기사가 분신했다. 플랫폼 사업자와 택시업계가 서로를 고소, 고발하는 법적 다툼도 이어졌다.
○ “회색지대 벗어나자”… 상생 모델로 차별화

이행열이 마카롱택시(KST모빌리티)에 합류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시작된 극심한 사회적 갈등. 그는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태풍의 중심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느 정도 예상한 터였다. 이행열은 처음부터 택시업계와 갈등을 풀어나가며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규제 적용 여부가 불투명한 회색지대(그레이존)가 아니라 합법의 영역에서 사업을 이어가길 원했다. 일반 택시를 앱으로 호출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가맹 택시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운이 좋았다. 설명회를 시작하자마자 이러한 전략에 공감하는 투자자가 나타났다. 벤처투자사(VC)가 50억 원을 투자했다. 택시 회사를 인수해 사납금을 없애고 완전 월급제를 도입했다. 2019년 4월 출시한 마카롱택시는 카시트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된 서비스로 입소문을 타며 좋은 평판을 얻었다.

“회색지대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게 스타트업 입장에선 더 힘들어요.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위해선 합법적인 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2019년 10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이행열이 찬성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기존 타다 서비스를 금지하는 대신 모빌리티 플랫폼이 기여금을 내고 운송, 가맹, 중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었다. 정부는 ‘타다활성화법’이라고 했지만 업계에선 ‘타다금지법’으로 부르던 그 법안이었다. 이행열은 업계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을 만나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2020년 3월 여객운수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100만 명의 이용자를 모았던 VCNC는 기여금을 내고 사업을 이어가는 대신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종료했다. 마카롱택시도 반사 이익을 얻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까지 몇 차례 투자 유치를 했다. 이행열은 1위 사업자인 카카오모빌리티와의 경쟁을 꿈꿨다.
○ 갈등이 사라지자 혁신 불씨도 꺼졌다
예상과 다르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큰 사회적 비용을 들여 택시업계와의 갈등을 봉합하자 국회와 정부의 관심은 식었다. 스타트업이 경쟁할 새로운 무대는 만들어졌는데 제대로 된 운영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갈등이 해소되자 혁신의 불씨까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갈등이 나타나면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서 역량을 집중하거든요. 문제는 그 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모빌리티 정책 개편을 담당한 실무진은 다 바뀌었어요. 업체가 경쟁할 ‘링’만 만들고선 규칙이나 심판도 없는 상황이었죠.”

국회, 정부, 경쟁 업체 모두 망설이고 있을 때 가장 많은 이용자와 택시 기사를 확보해뒀던 카카오T의 독주가 이어졌다. 카카오T의 독점 체제가 굳어지면서 타다 외에도 차차, 풀러스 등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사업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카카오모빌리티가 마냥 승자였던 건 아니다. 골목상권 침해, 수수료 인상 등의 논란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고, 혁신에 기반한 사업 확장성도 떨어져 매각 논란을 겪기도 했다.

마카롱택시도 역부족이었다. 이행열은 택시업계와의 갈등을 풀고 플랫폼 사업을 제도화하는 것에 주력했지만, 경쟁사에 묶여 있는 이용자를 마카롱택시로 끌어올 방안은 마련해두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이행열은 지난해 5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정부와 정치권이 혁신을 지켜주겠다는 명확한 신호가 있어야 새로운 스타트업이 뛰어놀 수 있습니다. 저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창업자가 없었으면 합니다.” 그가 오답노트를 남기는 이유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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