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홈리스’ 임승현 감독
청년 빈곤 문제와 독거노인 문제 등 결이 조금 다른 두 문제를 모두 아우르면서도 그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난제에 창의적인 답안을 내놓듯 등장한 영화가 있다. 15일 개봉한 ‘홈리스’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는 젊은 부부가 갓 돌이 지난 아들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남편 한결(전봉석)과 아내 고운(박정연)은 월세 보증금 사기를 당해 돈을 다 잃고 갈 곳 없는 처지. 한결은 배달을, 고운은 전단 배포 알바를 하며 발버둥 쳐보지만 다친 아들 병원비조차 없다. 찜질방에서 분유를 타고 모르는 사람들 틈에 아들을 재우는 부부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다. 벼랑 끝까지 내몰렸을 때 한결이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평소 자주 초밥 배달을 가며 형광등을 갈아주는 등 도움을 줬던 독거노인 예분(송광자)의 집. 예분이 미국의 아들 집에 가 있는 동안 집에 머물라고 허락해줬단다. 그런데 한시름 놓은 고운과 달리 한결은 뭔가 초조해 보인다.
영화 '홈리스'에서 찜질방을 전전하던 한결(전봉석·오른쪽)과 고운(박정연·왼쪽)이 독거노인 예분의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제공.
영화는 임승현 감독(35)의 장편영화 데뷔작. 지난해 50회를 맞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한국 극영화 중 유일하게 초청되는 등 호평받았다. 영화제 측은 당시 “‘홈리스’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흡입력 있게 다루고 있다. 임 감독은 첫 장편 주제 선정에서 신인 감독들을 넘어서는 현명함을 보여줬다”라고 극찬했다.
영화 '홈리스'를 연출한 임승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임 감독은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19세일 때 가세가 기울면서 우리 가족이 찜질방에서 산 기억이 있다. 당시 경험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집 없는 청년 부부를 주인공을 내세운 것에선 대해 “나도 MZ세대지만 MZ세대의 또 다른 이름은 ‘홈리스 세대’”라며 “정부나 부모의 완벽한 지원 없이는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건 이제 불가능해지지 않았나. 그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청년 빈곤과 독거노인 문제를 그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 임 감독은 공포와 스릴러의 장르적 문법을 활용해 긴장감을 조금씩 끌어올리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방식은 매우 신선하고도 파격적이다. 임 감독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들을 가장 흡입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택한 것이 공포-스릴러 장르였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공포·스릴러 장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시각적인 충격을 주는 장면이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음악은 없다. 그는 “그런 장면이나 음악을 넣으면 관객들이 그것에 몰입하게 돼 청년이나 독거노인 문제 등의 메시지가 흐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인 청년 부부와 독거노인의 자세한 사연은 나오지 않는다. 이 역시 ‘전략적 생략’이라는 것이 임 감독 설명. 그는 “주인공들이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청년, 독거노인으로 보이길 바랐다”라며 “너무 자세한 사연이 들어가면 영화 속 이야기가 지극히 특수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비치면서 논의가 확장되지 못할 것 같았다”라고 했다.
“청년 문제든 독거노인 문제든 그 근원은 무관심이라고 생각해요. 무관심이 빚어낸 공포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요. 이 영화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만든 것도 교훈을 주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주변의 누군가에 관심을 갖고 한 번쯤이라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