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공허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외톨이였다. 동맹국과 적국 모두 트럼프 리더십을 무시하고 비웃었다.”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집에 나온 내용이다. 트럼프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바이든을 보면서 그가 당선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일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국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바이든 취임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뒤통수를 맞았다’는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근래 바이든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사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전기차와 반도체를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압박하고 있고, 15일에는 중국과 관련 있는 외국 기업들이 반도체, 바이오 등 분야의 미국 기업을 인수합병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높여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트럼프의 정책에 비해 효과가 직접적이고 파급력이 크다. 중국을 넘어 한국과 유럽 등으로 불똥이 번지고 있다.
▷집권 초 바이든의 외교 전략은 트럼프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듯 보였다.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민주 진영 110개국 정상들을 모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트럼프가 추진했던 주독 미군 감축 계획도 중단시키는 등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트럼프 시대에 의미가 퇴색했던 동맹, 인권 같은 단어들에 다시 무게가 실렸다.
▷미 언론에선 “트럼프는 말로 했지만 바이든은 행동으로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내에서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져온 개념이다. 트럼프가 이를 전면에 앞세우면서 브랜드화했을 뿐이다. 오히려 정치 초보였던 트럼프는 두서없이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여 실제 효과는 크지 않았다. 반면 6선 의원 출신에 외교가 주특기인 바이든은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진행하고 있다. ‘조 아저씨(Uncle Joe)’의 웃음 뒤에 가려진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이런 고수를 상대하기 어렵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