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사기 ‘로맨스스캠’ 기승 코로나 후 SNS로 채팅-소개팅… 비대면 데이트 즐기는 사람 늘자 내국인이 내국인 상대로 사기… 미국서도 20, 30대 피해자 급증
30대 여성 A 씨는 최근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크리스 김’이라는 남성을 알게 됐다. 김 씨는 홍콩에서 개인 사업을 하다가 잠시 귀국했으며 서울 고급빌라에 거주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이상형에 가까운 김 씨의 외모와 재력에 A 씨는 호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한 달 가까이 달콤한 대화를 이어가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러던 중 김 씨는 과거 한 채팅 사이트에 보관해둔 3000만 원이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출금을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걱정하는 A 씨에게 김 씨는 사례금 500만 원을 약속하며 출금을 부탁했다.
A 씨는 100만 원의 가입비를 내고 해당 사이트에 가입한 뒤 출금 수수료 300만 원까지 냈다. 하지만 출금 버튼을 클릭하자 ‘오류’ 메시지만 떴다. 다음 날 해당 사이트는 접속이 되지 않았고 김 씨와의 연락도 끊겼다. 김 씨도, 사이트도 모두 가짜였다.
15일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로맨스스캠 피해 금액은 20억7000만 원으로 2020년(3억7000만 원)에 비해 5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센터에 신고되지 않은 사건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채팅 앱을 통해 A 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기를 당한 피해자 80여 명은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소송을 대리하는 송앤최 법률사무소의 최지현 변호사는 “과거엔 외국인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로맨스스캠이 대다수였는데 최근 내국인이 내국인을 상대로 사기 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유사한 사이트를 통해 환전 사기 방식으로 이뤄지는 로맨스스캠이 많아 수사기관에 사건 병합을 요청했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2020년 3억7000만 달러 수준이던 로맨스스캠 피해 규모가 지난해 5억4700만 달러로 늘었다. 과거엔 혼자 살면서 말동무나 연인을 찾는 70대 이상 고령층 피해자가 많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개인 시간이 늘어난 20, 30대 청년층에서 피해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회사원 이모 씨(35)도 7월 초 데이트 앱에서 ‘안나’라는 여성을 만나 친해졌다. 그녀는 가상자산 선물 투자로 큰 수익을 내고 있다며 자랑했고 관심을 보이는 이 씨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이틀 만에 100%의 수익률을 올린 이 씨는 투자금을 2000만 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안나의 소개로 가입한 거래소는 가짜였고 이 씨는 고스란히 2000만 원을 날렸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채팅 앱에서 만나고 가상자산까지 활용되면 인적사항을 특정하기 어려워 수사가 힘든 경우가 많다”며 “SNS로 낯선 이성을 만날 때는 로맨스스캠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