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의 공동실험센터에선 LG전자, 화학, 이노텍, 디스플레이 등 다른 계열사 연구원들이 같은 사무실을 쓴다. 미래사업에 쓸 소자를 함께 개발하고 소재, 부품 관련 연구를 하려면 서로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필요에 따라 뭉쳤다가 성과를 낸 뒤 흩어지는 빠른 대응이 이 회사 연구개발(R&D)의 노하우다.
▷어제 중국 공산당 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LG그룹 R&D단지인 사이언스파크 내 제품 전시장을 찾았다. 1시간 동안 머물며 단지 관련 설명을 듣고 가전 로봇 디스플레이 등 대표 제품을 눈으로 확인했다. 리 위원장의 사이언스파크 방문은 올 7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문 이후 두 달 만이다. 당시 옐런 장관은 사이언스파크 내 LG화학연구소에서 전기차 배터리 충전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리 위원장의 사이언스파크 방문은 중국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LG 측은 전했다. 기업 R&D 허브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듣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실제 66명 규모의 중국 대표단에는 경제 산업 분야 고위급 인사가 많이 포함돼 있다. 5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할 당시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미국 측이 원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기술패권 전쟁이 격화하면서 미중의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미중 최고위 당국자의 잇단 방한은 한국에 일종의 러브콜이자 압박이다. 한국 기업이 가진 기술력 덕분에 미중이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려 하고 있지만 등을 돌린 어느 한쪽이 언제 어떤 보복을 하고 나설지 모를 일이다. 서방과 비서방 간 신냉전이 가속화될수록 한국의 딜레마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국익 차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미중이 한국을 찾는 것은 기업의 기술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전쟁에서 낙오하는 순간 한국은 공급망에서 배제될 뿐 아니라 동맹도 찾지 않는 나라가 될지 모른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