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성폭력 피해자가 통상적인 피해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씨(70)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A 씨는 2019년 1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B 씨(30·여)를 경기 구리시의 한 모텔로 데려가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예전에 국가대표 감독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데 여기는 너무 춥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 모텔에 가자”면서 B 씨와 모텔로 갔다. 이어 일방적으로 생활비 등에 보태라며 50만 원을 가방에 넣어준 뒤 신체 접촉을 했다. B 씨는 피해 당일 성폭행 피해자 지원센터에 신고한 뒤 다음 날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 씨는 사건 이후 성폭행 상담소 직원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자살시도를 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자살을 막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전후 피해자의 태도가 강제추행 피해자라 하기에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처음 만난 A 씨와 별 저항 없이 모텔에 동행한 점, 사건 직후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텔을 빠져나가려 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B 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잘못된 통념에 따라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합리성을 부정했다”며 지적했다.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만큼 통념이 아닌 피해자 상황에 기초해 진술 신빙성을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또 B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이 “수긍하기 어렵다”고 본 B 씨의 행동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당시 심리 상태나 40살의 나이 차이로 A 씨를 믿고 의지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