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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윤석열 것은 尹에게, 이재명 것은 李에게

입력 | 2022-09-19 03:00:00

李 두려움, 대선 후 한국정치 動因… 이재명 비리의혹에 윤석열 물타기
포퓰리즘 좌파의 ‘섞어찌개’ 수법… 兩非論 횡행, 李 누르면 尹 나온다



박제균 논설주간


3월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 정치를 물밑에서 움직이는 동인(動因)은 두려움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처리에 대한 두려움. 이 대표는 대선 전부터 그런 두려움을 토로했다. “이번에 제가 (선거에서) 지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갈 것 같다”고.

너무 나갔다 싶었던지, 발언 이틀 뒤 ‘내 얘기가 아니라 검찰공화국 우려를 표현했다’고 물을 타기는 했다. 하지만 발언 당시 “제가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기득권과 부딪혔고 공격을 당했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두렵다”는 설명까지 붙인 걸 보면 그의 두려움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재명의 두려움은 윤석열 당선이 현실화하면서 고조됐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천 계양을 지역구 출마는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두려움을 덮어 줄 방탄 갑옷의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마침 7월부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상대적으로 이재명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당 대표 출마부터 당선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1600만 표 이상을 얻은 0.73%포인트 차 2위에 이어 국회의원 배지, 다수당 대표까지 ‘방탄의 3종 세트’를 구비한 셈이다.

그러면 이제 이 대표의 두려움은 해소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대표와 관련해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백현동·위례 개발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배우자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에 장남의 불법도박 의혹도 수사 중이다.

만에 하나, 이 대표가 구속되거나 피선거권을 잃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장 속이 후련해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사에 불행한 일이자 무시 못 할 후폭풍을 불러올 게 뻔하다. 직전 대선 2위이자 거대 야당 대표가 구속되거나 피선거권을 잃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지만, 수사는 생물이다. 변호사 출신인 이 대표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재인 정권 내내 무사했던 은수미 전 성남시장도 지난 주말 법정구속 되지 않았나.

이 대표가 두려움으로 움찔할 때마다 ‘이재명 방탄당’으로 돌변한 민주당은 요동을 칠 것이다. 그럴수록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측에 대한 공격도 물불을 가리지 않을 터. 바로 이재명 비리 의혹에 윤석열 물타기 수법이다.

이 대표의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 주변을 물고 들어가 이재명이나 윤석열이나 도긴개긴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려는 것이다. 이재명 비리의 잉크 색은 상대적으로 옅어지고, 윤 대통령은 그 잉크를 묻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울러 이 대표에게 대통령으로부터 핍박받는 야당 지도자의 옷을 입히려는 것. 대선도 끝난 마당에 이 대표가 굳이 자신을 윤 대통령의 ‘정적(政敵)’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전술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재명의 비리 의혹과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무엇보다 대통령 평가의 제1기준은 국정 운영이다. 그럼에도 전혀 별개의 문제를 한 냄비에 넣어 ‘섞어찌개’를 만드는 게 포퓰리즘 좌파의 오랜 수법이다. 문 정권 때 정치적으로 불리해지면 뜬금없이 ‘토착왜구’ 운운하며 친일몰이를 하거나,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 걸 돌아보라.

민주당이 7일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한 게 대표적인 섞어찌개 전법이다. 정권이 바뀐 뒤 수사당국이 김 여사 관련 수사를 뭉그적거린 게 빌미를 준 측면도 있으나, 취임 4개월 된 대통령의 부인을 탈탈 털겠다는 건 정치 도의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재명 방탄당이 돼버린 민주당에 정치 도의를 말하기도 어렵게 됐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초장부터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재를 뿌리려는 심보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재명 사법 리스크의 대응이 다급하다는 반증(反證)이다.

문제는 지난 정권 5년을 거치면서 포퓰리즘 좌파의 섞어찌개 수법이 잘 먹히는 사회적 토양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그런 토양에서 양비론(兩非論)이 횡행하고, 이재명 단추를 누르면 윤석열이 나오는 본말전도가 이루어진다. 그런 사회에선 공정과 불공정, 정의와 불의의 경계마저 모호해진다. 그런 사회로 가지 않으려고 정권을 교체했건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윤석열의 것은 윤석열에게, 이재명의 것은 이재명에게 돌려주는 상식의 복원이 절실하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