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일 피해자 살던 곳 2차례 배회, 외모 닮은 다른 여성 미행하기도 징역 10년이상 보복살인 혐의 적용 살해범, 위치추적 교란 앱 설치… 현금인출기서 1700만원 인출 시도 警 “도주 준비”… 오늘 신상공개 심의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신당역 스토킹 살인’의 범인 전모 씨(31·구속)가 사건 발생 최소 11일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 씨는 이달 3일 피해자인 전 동료 역무원 A 씨(28)의 근무지 정보를 확인했으며, 14일 범행 전 A 씨가 과거에 살았던 동네를 두 차례 찾아가 A 씨와 닮은 여성을 미행했다. 경찰은 전 씨의 혐의를 징역 10년형 이상에 처해지는 ‘보복살인’으로 변경했다. 19일에는 전 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 범인, 피해자 닮은 여성 미행도
18일 경찰에 따르면 전 씨가 범행을 미리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전 씨는 범행 11일 전인 이달 3일 지하철 6호선 구산역 역무실에서 자신을 ‘불광역 직원’이라고 소개한 뒤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을 통해 A 씨 근무 일정을 확인했다. 또 경찰이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결과 전 씨는 14일 오후 2시 반 집을 나선 뒤 구산역 근처를 찾아가 2시간 이상 일대를 배회했다. A 씨는 구산역 인근에서 거주지를 옮긴 뒤였지만 전 씨는 이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전 씨가 당시 범행에 쓰인 흉기를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피해자의 예전 집 앞에서 기다리던 전 씨는 A 씨와 외모가 닮은 여성을 7분가량 미행하기도 했다. A 씨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그는 오후 6시경 구산역 역무실에서 다시 A 씨의 근무 일정을 파악했다. 이어 다시 A 씨의 옛집 인근을 배회하다가 오후 7시경 일회용 승차권을 끊어 지하철을 타고 범행 장소인 2호선 신당역으로 이동했다.
전 씨는 앞선 14일 오후 1시 20분경 자신의 집 근처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예금 전액인 1700만 원을 인출하려고 했지만 인출 한도가 초과돼 실패했다. 전 씨는 ‘부모님께 드리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범행 뒤 도주를 준비하려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 경찰, 보복살인 혐의 적용
전 씨는 범행 당일 오후 3시경 정신과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 경찰 조사 등에서 “평소 우울증세가 있다. 범행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형을 감경받는 것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은폐 등을 미리 준비한 계획범죄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17일 전 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태블릿PC와 외장하드를 분석하고 있다.경찰은 전 씨의 혐의를 형법상 살인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살인) 혐의로 변경했다. 전 씨는 “피해자가 고소한 사건에 대해 합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 씨에게 내려질 수 있는 형량은 5년 이상의 징역(살인)에서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늘어난다. 경찰 관계자는 “19일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전 씨의 이름과 얼굴 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추모 이어져
신당역 출구 앞에도 추모공간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출구 앞 추모공간에서 18일 시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경찰은 19일 범인의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성단체들은 17일 추모제를 열고 “여성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정부는 구조적 폭력임을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