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너마저의 리더이자 보컬, 베이스를 맡고 있는 윤덕원. 14일 개막하는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무명 아티스트 장우 역으로 인생 처음 배우에 도전한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보편적인 노래’ ‘유자차’ ‘앵콜요청금지'. 또박또박한 멜로디에 담은 진솔한 가사, 소박하고 절제된 감정선의 곡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리더 윤덕원(40)이 연극에 첫 도전한다. 다음달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무명의 아티스트 장우로 무대에 서는 것. 작품은 소설가 장류진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배우로서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웃었다.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의 원작,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장 작가가 판교 IT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원작은 ‘테크노밸리의 고전’이라 불릴 정도로 2019년 출간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2030 평범한 직장인이 겪는 일상의 성취와 애환을 정확하고 사려깊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공연은 단편 소설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 중 7편을 ‘직장인의 일과’를 주제에 맞춰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었다. 지난해 초연과 달리 올해는 ‘다소 낮음’이란 단편이 새로운 에피소드로 추가됐다.
“장류진 작가의 글을 읽을 때,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이의 마음엔 있지만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정확하게 끌어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희 공연에선 책 속의 그런 문장들이 배우의 목소리로 재현되거든요.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실제 목소리로 들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잖아요? 그런 울림이 있는 공연입니다.”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의 지난해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그가 맡은 인디뮤지션 장우는 지난해 공연된 초연 때는 없던 배역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지만 좀처럼 자리는 잡히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도 마음 먹은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사는 30대 청년. 극중 장우의 역할은 장면과 장면,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를 라이브 기타 연주와 노래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사보다는 노래와 연주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그가 무대에서 부르는 솔로곡은 3곡.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타인이 만든 노래를 공개석상에서 부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 속 장우는 다른 인물을 만나 스토리를 전개시키기 보단 내면의 심정이 주로 묘사되거든요. 공연에서 장우는 다른 배우들과 대화하기보단 주로 노래와 연주로 감정을 표현해요. 장우의 솔로곡 중에선 ‘나만의 작은 밤’이란 곡을 특히 좋아해요. 우리 모두 밖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회복하잖아요. 그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는 노래라 와 닿았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세 멤버의 모습. 왼쪽부터 류지, 덕원, 잔디
지금은 류지(보컬·드럼), 잔디(건반)과 3인으로 활동하는 ‘브로콜리너마저’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재학 시절인 2005년 그가 결성한 밴드다. 잠시 회사에 다니다 1년 만에 그만두고 만든 정규앨범 1집 ‘보편적인 노래’(2008년)가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는다. 이후 2집 ‘졸업’(2010년), 3집 ‘속물들’(2019년)까지 3장의 정규앨범과 싱글을 발매한 14년차 인디밴드의 리더로 살고 있다.
“곡을 쓸 땐 ‘어떤 이야기를 할까’가 가장 중요해요. 나이를 먹어가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의미 있는 노래로 만들고 싶었어요. 경험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게 어렵잖아요.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처럼 뛰어난 표현력을 갖고 싶단 꿈이 생겼어요. 내년 발표를 목표로 준비 중인 다음 앨범에 이번 공연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무척 기대됩니다. 하하.”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5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