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총리, 영빈관 신축 옹호 못하고 지지자들조차 영빈관에 비판적이니 청와대 대체할 용산 대통령실 가능한가… 억지스럽게 밀어붙인 결정의 결과다
송평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면밀한 검토를 거친 줄 알았으나 그런 건 없었다. 어느 신문 국방전문기자가 칼럼에서 한번 던져 본 제안을 받아 하루아침에 광화문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바꿨다.
윤 대통령은 CEO처럼 포인터까지 들고 집무실 이전을 직접 브리핑하면서 이전 비용은 496억 원이 든다고 했다. 500억 원도 안 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마사지한 흔적이 역력한 수치다. 경찰 경호부대 이전 등으로 307억 원이 이미 추가됐다. 누구라도 생각할 경호부대 이전 비용 같은 걸 빼고 제시한 496억 원은 기만적이다.
대통령 측은 영빈관으로 청와대 영빈관 혹은 용산의 국방컨벤션센터나 국립박물관 또는 민간 호텔을 활용할 수 있어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영빈관 신축 예산으로 878억 원을 편성했다. 비난이 빗발치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예산을 철회하긴 했지만 이 소동은 영빈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속사정을 보여준다.
이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국방부가 합동참모본부 자리로 옮겨가고 합참은 남태령의 수도방위사령부 자리로 옮겨간다. 대통령 측은 합참 이전은 예정된 것이고 그 비용은 1000억 원 정도라고 밝혔으나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얼마 전 3000억 원까지 들 수 있다고 수정했다. 합참이 수방사 자리로 가면 수방사의 전부 혹은 일부가 옮겨가야 한다. 수방사가 땅값 비싼 서울 인근 다른 데로 옮겨가는 비용도 3000억 원에 포함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대통령 측은 애초 공관 공사로 한 달 정도 서초동 자택에서 출퇴근할 것이라고 했으나 취임 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공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공관 공사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청와대에 들어가 달라는 요구는 듣지 않았다. 그런 고집은 정상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건희 여사의 무속 신앙이 거론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자택에서 용산으로 출퇴근하면서 그로 인한 서울 서초·용산경찰서 직원들의 초과 근무 시간이 폭증해 8월 말로 5000시간을 넘어서고 1억 원이 넘는 초과 근무 수당이 지급됐다. 돈도 돈이지만 경찰이 하지 않았어도 될 일을 하느라 민생 업무가 차질을 빚고 있다.
청와대가 빈집이 되면서 그 활용 방안이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인근에 청와대 소장품을 전시할 국립현대미술관 등 미술관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돈 들여 미술관을 또 하나 만들겠다니 청와대를 김 여사의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청와대 관광상품화라고 포장해 152억 원을 배정했다.
국민이라면 집무실 이전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집무실 이전으로 경호나 보안 사고가 발생해 대통령이나 나라의 안위가 위협받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한가지일 것이다. 대통령의 집무실이 관저와 떨어져 있고 영빈관도 없는 상황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대통령도, 총리도, 집무실 이전을 지지했던 언론도 영빈관의 필요성을 호소하기는커녕 예산을 철회하거나 언급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앞장서 비판하고 있다. 집무실 이전의 정당성 기반이 실은 허약한 것이다. 여야는 대통령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관저와 영빈관까지 지어주든가, 아니면 용산은 임시 거처라 치고 청와대를 개조해 다시 돌아가는 건설적 협의를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의 원형을 보존한 상태에서 청와대가 가진 대통령실의 역사와 문화예술 문화유산 수목 등의 콘텐츠를 결합한 문화예술역사 복합공간으로 청와대를 조성할 계획이다. 따라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돈 들여 미술관을 또 하나 만들겠다’ ‘관광상품화라고 포장했다’는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