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인플레법이 불지핀 보조금 논쟁
5월 22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이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방한 중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전기차 및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신설을 포함한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AP 뉴시스
이건혁 산업1부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이 국내 전기자동차 보조금 정책 논쟁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차별적으로 혜택을 주는 IRA에 맞서 한국도 외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자는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해외 기업의 배를 불리게 하지 말고, 한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다.
전기차 보조금은 대상과 효과 등을 놓고 늘 시끄러웠던 이슈다. 올해 들어 미국의 IRA 도입, 국내 전기차 보급 확대와 맞물리며 더욱 복잡한 문제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건 2011년부터다. 처음에는 공공기관으로 보조금 지급 대상이 제한됐다. 2013년부터 일반 국민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게 됐다.
○ 친환경차 보급 수단이 산업 보호 방패로 변형
하지만 차별적 보조금 정책도 있다. 중국은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해야만 보조금을 준다는 단서 조항을 통해 자국 시장을 보호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8월 서명한 IRA에는 북미 시장에서 전기차가 완성돼야 하고, 배터리 소재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했다. 표면상으로는 전기차 보급을 늘려 기후변화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전기차 보조금을 무기로 전기차 시장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IRA 최대 피해자 한국…‘미중 전기차 견제해야’ 반발
중국 업체들은 승용차보다 경쟁이 덜한 전기버스 판매에 집중했다. 그 결과 보조금 지급 비중이 2020년 3.8%에서 올 상반기 7.2%로 증가했다. 중국산 전기버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른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공정한 경쟁을 막는다면, 한국도 국산 전기차에 혜택을 더 주고 수입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급을 폐지해야 한다”도 주장했다.
○ 보조금 정책 면밀 검토해야…감정적 대응은 안 돼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업계 고위 관계자는 “전기차 보조금을 둘러싼 최근의 주장들에는 다소 감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수정했을 때의 장단점과 산업 및 환경에 미치는 효과 등이 면밀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의 편익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보조금 유무가 전기차 구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게 현실인 만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조금 정책에 있어 특정 국가를 노리고 차별 조항을 만드는 건 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했다. 환경부는 현재 2023년 전기자동차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나재원 원광대 스마트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전기차 보조금이 도입된 1차 목적은 친환경차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적별로 차이를 뒀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IRA 도입을 계기로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전기차 산업을 한 단계 성숙시킬 방안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7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친환경자동차 지원 사업 분석’ 보고서는 “보조금 지원보다 전기차 수요와 공급을 활성화할 수 있는 규제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에는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국가 정부나 업체들이 반발하기 어려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국내 연구개발(R&D) 및 사후관리(AS)에 일정 규모 이상 투자할 때에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건혁 산업1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