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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인사이트]‘전기차 패권’ 무기된 보조금… “한국도 외국산 차등지급” 논란

입력 | 2022-09-21 03:00:00

美인플레법이 불지핀 보조금 논쟁



5월 22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이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방한 중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전기차 및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신설을 포함한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AP 뉴시스

이건혁 산업1부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이 국내 전기자동차 보조금 정책 논쟁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차별적으로 혜택을 주는 IRA에 맞서 한국도 외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자는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해외 기업의 배를 불리게 하지 말고, 한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다.

전기차 보조금은 대상과 효과 등을 놓고 늘 시끄러웠던 이슈다. 올해 들어 미국의 IRA 도입, 국내 전기차 보급 확대와 맞물리며 더욱 복잡한 문제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건 2011년부터다. 처음에는 공공기관으로 보조금 지급 대상이 제한됐다. 2013년부터 일반 국민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게 됐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환경부 주관이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는 수단으로 전기차를 선택한 것이다. 전기차 보급을 늘려 배기가스를 내뿜는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하겠다는 접근법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채택한 방식이다. 특히 기후변화에 민감한 북유럽 국가들이 강력히 추진했다.》


○ 친환경차 보급 수단이 산업 보호 방패로 변형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전기차는 472만 대였다. 전 세계에서 판매된 완성차의 5.8%에 해당한다. 각국은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랐다고 보고 인위적 유인책인 보조금을 점차 축소하고 있다. 영국은 올해 전기차 보조금을 완전 폐지했고 독일도 내년부터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한국도 비슷하다. 국고보조금 한도는 꾸준히 줄어 올해 기준 700만 원까지 내려왔다. 이마저도 5500만 원 미만일 경우에만 100% 지급된다.

하지만 차별적 보조금 정책도 있다. 중국은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해야만 보조금을 준다는 단서 조항을 통해 자국 시장을 보호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8월 서명한 IRA에는 북미 시장에서 전기차가 완성돼야 하고, 배터리 소재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했다. 표면상으로는 전기차 보급을 늘려 기후변화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전기차 보조금을 무기로 전기차 시장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IRA 최대 피해자 한국…‘미중 전기차 견제해야’ 반발

IRA에는 여러 나라가 발끈하고 나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 전기차 시장에서 가파르게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Canaly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전기차는 3만3556대가 팔리며 점유율 9.1%를 기록했다. 1위 테슬라의 25만9790대(70.3%)와는 격차가 크지만, 경쟁 업체들과의 차이를 벌리기 시작했다.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신형 전기차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최고의 차로 선정되며 소비자들의 인정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로이터통신은 현대차·기아가 IRA의 최대 희생양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정부 대표단이 IRA 조항을 수정하기 위해 미국 측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IRA를 건드리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자 한국도 미국에 보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IRA가 차별적 보조금을 금지하는 한미 FTA,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배치된다는 점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5일 “한국도 테슬라 같은 미 전기차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무역 보복의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외국산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구호에는 국내 시장을 미국, 중국 등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환경부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전기차 국비보조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산 차량에 87.5%가 지급됐다. 중국(7.2%)과 미국(3.1%)이 뒤를 이었다. 미국산 차량은 2020년 전체 보조금의 18.8%를 가져가기도 했지만 올해 테슬라 판매량이 주춤하면서 보조금 지급 규모가 줄었다. 그런 가운데 중국산 차량의 도약이 눈에 띈다.

중국 업체들은 승용차보다 경쟁이 덜한 전기버스 판매에 집중했다. 그 결과 보조금 지급 비중이 2020년 3.8%에서 올 상반기 7.2%로 증가했다. 중국산 전기버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른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공정한 경쟁을 막는다면, 한국도 국산 전기차에 혜택을 더 주고 수입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급을 폐지해야 한다”도 주장했다.


○ 보조금 정책 면밀 검토해야…감정적 대응은 안 돼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업계 고위 관계자는 “전기차 보조금을 둘러싼 최근의 주장들에는 다소 감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수정했을 때의 장단점과 산업 및 환경에 미치는 효과 등이 면밀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의 편익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보조금 유무가 전기차 구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게 현실인 만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조금 정책에 있어 특정 국가를 노리고 차별 조항을 만드는 건 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했다. 환경부는 현재 2023년 전기자동차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나재원 원광대 스마트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전기차 보조금이 도입된 1차 목적은 친환경차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적별로 차이를 뒀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 정부에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하지 말라고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한국 시장에 보조금 장벽을 세우는 건 전략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8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유사한 보복 조치를 채택해 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협상에서 미국에 호혜적 조치를 요구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다만 미국의 IRA 도입을 계기로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전기차 산업을 한 단계 성숙시킬 방안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7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친환경자동차 지원 사업 분석’ 보고서는 “보조금 지원보다 전기차 수요와 공급을 활성화할 수 있는 규제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에는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국가 정부나 업체들이 반발하기 어려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국내 연구개발(R&D) 및 사후관리(AS)에 일정 규모 이상 투자할 때에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건혁 산업1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