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거절 月220건… 작년보다 32% ↑ 세입자들 전세금 떼일까 전전긍긍
직장인 김모 씨(41)는 지난해 6월 서울 성북구 신축 소형 빌라(전용 59m²)에 보증금 4억 원 전세 계약을 맺은 뒤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이 많다는 이유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전세보험) 가입을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체납 세금이 많은 것도, 체납액이 많으면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것도 몰랐다”며 “전 재산과 다름없는 전세금을 나중에 못 돌려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다.
올 들어 전세보험 가입을 거절당한 세입자가 역대 가장 많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빌라 6곳 중 1곳은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일 정도로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위험이 높아졌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보장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빌라 56% ‘깡통전세 위험’… 세입자 보호 전세보험은 구멍
‘전세보험 퇴짜’ 최다
빌라 16%는 전세가 매매가 웃돌아… 가입거절 사유 1위 ‘보증한도 초과’
세입자, 세대별 계약내용 알수없어
다가구 보증보험 가입부터 어렵고 보험가입 하고도 보증금 못받기도
“계약前 보험가입 여부 알게 해야”
서울 구로구 개봉동 A빌라(전용면적 44m²)는 올해 1월 3억9500만 원에 세입자를 받았다. 석 달 뒤인 4월에는 같은 빌라 같은 면적인데도 이보다 1000만 원 낮은 3억8500만 원에 팔린 점을 감안하면 전형적인 ‘깡통전세’다. 신축 빌라라 매매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전세가를 매매가보다 더 높게 불러 세입자를 받은 것.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신축 빌라는 건설사가 분양가를 높게 책정한 뒤 그에 맞춰 세입자를 받고 실제론 할인 분양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나중에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것을 알고 땅을 치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올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험 가입 거절 건수가 역대 최다 수준을 나타낸 것은 빌라를 중심으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이 위험 수준으로 높아진 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전세보험은 세입자에게 최후의 보루와 같은 안전장치이지만 가입 자체가 안 되는 사각지대가 적지 않은 셈이다.
○ 서울 빌라 6곳 중 1곳은 전셋값이 매매가 웃돌아
올해 4월 서울 강동구 다가구주택에 보증금 2억6000만 원의 전세 계약을 맺은 이모 씨(36)는 ‘선순위 채권 파악 불가’라는 이유로 전세보험 가입을 못 했다. 이 다가구주택에 먼저 입주해 있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선순위 채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주택의 매매가격 대비 부채 비율 파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집주인에게 가구별 계약 내용을 알려 달라고 했지만 집주인이 동의해 주지 않았다”며 “다가구는 보증보험 가입이 사실상 어렵다는 사실을 계약 뒤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 전세보증보험 ‘무용지물’인 사례도…“계약 전 보호 장치 더 마련해야”
전세보험에 가입했지만 전세 사고 이후 HUG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도 올해 상반기(1∼6월) 41건으로 지난해(29건)를 넘어서 이미 역대 최다 수준이다. HUG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겠다며 전입신고를 잠깐 다른 곳으로 해달라는 집주인 요청을 들어주는 등 세입자가 보험 가입 이후 대항력을 상실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자영업자 전모 씨(40) 역시 보험 가입을 했지만 전세 계약 뒤 전입신고를 하기 전에 집주인이 바뀌면서 대항력을 잃었다. 전 씨는 “새 집주인이 집을 팔아 체납 세금을 내겠다며 이사비 정도만 주겠다고 통보했다”고 했다.
제도권 밖에 놓인 세입자를 보호할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은 “전세보험은 전세 계약서를 기반으로 이뤄져 가입이 거절되면 전세 사고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셈”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전세 계약 체결 전에 알 수 있도록 보완하는 게 최선”이라며 “정부가 빌라의 정확한 시세, 임대인의 세금 체납 정보 등을 조속히 공개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통상 80% 넘으면 ‘깡통 전세’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류된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