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신고 면접에 합격해서 팔아요. 좋은 기운 받아가세요.”
서울 동작구에서 1년 반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정모 씨(29·여)는 최근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단정한 면접용 구두를 찾고 있다. 올 하반기(7~12월) 본격적인 공채 시즌을 맞이해서다. 그 중에서도 ‘취업에 성공한 뒤’ 중고거래 사이트에 나온 구두를 찾고 있다.
이달 삼성·SK·LG·현대자동차·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들이 하반기 채용을 시작했다. 나날이 물가가 오르며 중고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주머니가 가벼운 취업준비생들은 책이나 면접용 의류 등 취업 준비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팔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 자주 쓰는 물건이 아니어서 제값을 주고 사기 더 아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부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해 온 정 씨 역시 구두 뿐 아니라 다른 취업 물품도 중고거래를 하고 있다. 이미 공기업 취업용 서적은 5번 넘게 사고 팔기를 반복했다. 그는 “합격생이 공부했다는 책은 왠지 필기도 도움되게 잘 되어 있을 것 같아서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21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2 부산여성 취·창업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참가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정 씨와 같이 취준생들은 중고거래에서 물건과 함께 ‘합격 기운’을 눈여겨 보기도 한다.
지난달 말 최모 씨(32·여)는 ‘대기업 공채 합격’ 사실을 내세우며 면접 때 착용한 원피스나 블라우스 등 의류 여러 벌을 중고장터에 올렸다. 판매 게시물 제목은 물론, 본문까지 ‘국내 대기업 대졸공채 입사 후 이직해 현재는 모 그룹에 재직, 유명 대기업 합격 불패’라며 “기업 합격 기운 팍팍 담아 내놓는다”고 강조했다. 결과는 ‘완판’이었다.
취업에 절박한 청년들은 특정 대학의 커뮤니티 계정을 사고 팔기도 한다. 취업 스터디 결성이나 면접 후기 등 특정 대학 커뮤니티에서 보다 ‘고급’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대학 커뮤니티 계정 거래는 규칙상 금지돼있지만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3~5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성비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엄+Z세대)에게 중고 거래는 고물가 시대를 사는 요령 중 하나”라며 “특히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면접 의상처럼 평상시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의 중고거래가 더욱 활발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