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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 나에 대해 질문 던지는 시각예술가 박혜수

입력 | 2022-09-22 14:44:00

박혜수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20대 중반의 한 조소과 학생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2001)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영화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내용인데, 이 학생은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 인생 중에는 선택할 게 없다”고 생각했단다. 가족과 사회가 원하던 것만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꿈이나 사랑 같은 개인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했다”는 그는 “사라지는 것들 중에는 지켜야할 것들이 많았고, 얻으려는 것들 중에는 긴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고 깨달았다.

어느덧 그는 중견 작가가 되어 남들에게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다닌다.

“너는 네가 좋니?”

박혜수 작가. 돌베개 제공.



박혜수(48)는 사랑, 실연, 꿈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갖고 설문조사와 분석을 거친 뒤 시각예술 작품을 만들어 발표해왔다. 16일 발간된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은 그의 작업노트로, 그가 모아온 남들의 버려진 꿈이나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건과 사연 등이 빼곡하다. 또 고독사와 나이 듦, 코로나 유가족 등에 대한 작업 이야기도 함께 담으며 수많은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되묻는다.

21일 서울 금천구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만난 그는 2013년부터 지속해온 사랑과 실연에 관한 프로젝트 ‘굿바이 투 러브’를 마무리 짓는 전시 ‘모노포비아-외로움 공포증’(~11.26)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박혜수는 “이별 후에 남은 건 당신”이라며 “꿈이든 사랑이든 자신의 과거든 무엇인가를 상실하고 혼자가 된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박혜수, 기쁜 우리 젊은 날, 2022



그의 작업의 핵심은 감정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무표정했던 중년 공장 노동자들이 첫사랑을 이야기하며 미소짓는 영상, 이별 후 누군가가 혼자 끄적인 일기…. 타인의 사연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관람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찾고 어떠한 감정을 안고 돌아간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이 일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철학은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전시에서 생략하는 이유기도 하다. “제 이야기가 들어가면 작가에게 집중돼요. 관람객들이 스스로 ‘나’에 대한 질문을 안고 가는 것이 주 목적인데, 제가 주인공이 될 순 없죠.”

박혜수, Wish Piece, 2017, <당신이 버린 꿈> 답변지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작가 또한 수많은 이들의 사연과 관람객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 과거 혹은 현재, 미래의 자신을. 사람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사람’에겐 관심이 없다”고 답한다. “전 관람객을 제3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더라고요. 전 거울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관람객들도 저를 보면 그랬으면 해요.”

책과 전시를 보다보면 일관되게 ‘나’를 깨우는 질문들을 마주한다. “사는 게 재밌는지” “너는 누구인지” “너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따위들, 그리고 “너는 너를 좋아하는지”까지. 잘 물어오지 않았던 이 질문이야말로 필요한 질문은 아닐까. 작가가 던져놓은 질문을 그에게 되물었을 때 그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저는 저를 너무 좋아하죠.”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