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뉴욕=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뉴욕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각각 만났다. 숄츠 총리와는 정식 회담이 이뤄졌지만 기시다 총리와는 비공개 약식회담, 바이든 대통령과는 짧은 환담이었다. 대통령실은 한일 회담과 관련해 “두 정상이 만나 갈등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 만남의 형식이나 의전상 실책들이 외교적 의의마저 크게 퇴색시켰다.
2년 9개월 만에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은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한 행사장에 윤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국기도 없이 30분 동안 대좌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마치 군사작전 하듯 철통 보안 속에 회담 사실은 시작한 직후에야 공지됐다. 한국은 ‘약식회담’, 일본은 ‘간담’이라고 각각 밝혔다. 우리 대통령실의 일방적 발표에 일본 측이 발끈하면서 어렵사리 이뤄진 터라 한국이 회담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윤 대통령이 말한 ‘그랜드바겐(일괄타결)’ 기대도 무색하게 됐지만,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국민감정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통령실이 30분 정도로 예상했던 한미 정상회담은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행사에 윤 대통령이 참석해 48초간 환담을 나누는 것으로 대체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 정치 일정을 이유로 뉴욕 체류를 단축한 데 따른 여파였다지만, 이 짧은 만남을 위해 윤 대통령은 미리 잡혀 있던 두 가지 세일즈 외교 행사 참석도 취소해야 했다. 미국의 한국 전기차 차별 조치 같은 핵심 현안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더 큰 사고는 윤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비속어를 써가며 의회주의를 폄훼하는 듯한 발언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노출돼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그 점잖지 못한 언사는 외교 현장에 나선 윤 대통령의 느슨한 마음 자세까지 고스란히 드러낸 부끄러운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정도면 국민이 나라의 격(格)을 걱정하며 자존심 상해하는 지경이 됐다. 무거운 반성과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