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사회부 차장
주는 사람은 잊어도 받는 사람은 못 잊는 게 상처다. 반대로 받는 사람은 잊어도 주는 사람이 못 잊는 건 뇌물이다. 그 중간에 있는 게 선물이다. 선물의 경우 의미가 있을 때만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성남시장 시절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검찰은 김 전 처장이 이 대표에게 2009년 추석 선물을 보냈고, 시장 시절 6차례 이상 대면 보고를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12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인데 이 대표가 의도적으로 김 전 처장을 모르는 것처럼 발언했다고 결론 내리고,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이 대표를 기소했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에게 추석 선물을 받은 건 유명 정치인이 되기 전 변호사 시절이다. 기억이 안 날 만큼 명절 선물을 많이 받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후 해외 출장에서 골프를 같이 치고, 여러 차례 대면 보고를 받았는데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은 2라운드에서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TV토론과 달리 방송 인터뷰는 사전 질문지에 따라 미리 답변을 준비하는데, 이 대표가 의도적·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이다.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법원이 언제 최종 판단을 내릴지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는 내년 9월 말 끝난다. 김 대법원장 임기 내에 이 대표에게 유리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보은 판결’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또 판결이 지연되면 의도적으로 판결을 미룬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1라운드에서 사건 선고는 1년 7개월 만에 이뤄졌는데, 2라운드에서 판결이 빠른지 느린지 판단할 때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법조계에선 이 대표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00만 원 이상 벌금형 확정 시 이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하고, 민주당은 434억여 원의 대선 비용을 반환해야 한다. 이 같은 선거법 조항이 가혹하다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판사는 “재판부가 신청을 받아들이면 재판이 중단되면서 판결 확정까지 최대 5년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법원은 이미 1라운드에서 대장동 핵심 관계자인 김만배 씨와 친분이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이 무죄 결론을 유도했다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상처를 입었다. 그런 만큼 법원은 이번 사건을 명예회복의 계기로 삼아 엄정하게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공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왔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