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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 ‘나’를 깨우는 질문을 던진다

입력 | 2022-09-23 03:00:00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출간, 설치미술 박혜수 작가 만나보니…
버려진 꿈, 헤어진 연인의 물건… 사랑-꿈 등 보편적 주제로 작업
“관객들 스스로 질문 갖도록 하고 관객들 통해 나를 되돌아보죠”



박혜수 작가는 사랑, 꿈 등 개인의 삶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가치에 주목해 왔다. 그는 “최근 관심 갖는 주제는 ‘진짜’다. 다음 전시에선 관객에게 ‘당신의 삶은 진짜인가’란 질문을 던질 예정”이라고 했다. 돌베개 제공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

설치미술가인 박혜수 작가(48)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굳이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사는 게 재밌는지’ ‘지금 현재 스스로에게 무엇을 느끼는지’ 어쩌면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리고 그 답에 삶과 예술이 추구하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토대로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 작가가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사진)을 16일 출간했다. 한 편의 작업노트라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그가 창작활동을 위해 모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빼곡하다. 사랑이나 실연, 꿈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작품에 담아온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서울 금천구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모노포비아―외로움 공포증’ 전시장에서 21일 만난 그는 “남들의 버려진 꿈이나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건, 혹은 고독사와 나이 듦 등을 다룬 작업 과정도 책에 담았다”며 “수많은 상실 속에도 여전히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박 작가의 방식은 조소과 학생이던 20대 때 조우했던 영화 한 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올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브로커’로 친숙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2001년)란 작품이었다.

“영화는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줄거리였어요. 그런데 전 지금까지의 인생에선 선택할 게 없구나 싶었죠.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이었죠. 문득 꿈이나 사랑 같은, 나이 들수록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 중에 더 지켜야 하는 게 많은 게 아닐까요.”

11월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 역시 그런 고민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무표정한 공장 노동자들이 첫사랑 얘기를 할 땐 미소 짓는 영상,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에 홀로 써내려갔던 일기…. 작품들은 시종일관 타인의 사연을 다루지만, 그 속에서 작가는 물론이고 관객들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간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건 누구나 포기해선 안 되는 일이죠. 굳이 전시에서 제 얘기는 생략하는 이유도 작가에게 집중하면 관객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에요.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이 있다면,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겁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작가에게도 자신을 깨우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에게 관객은 아무 접점이 없는 ‘제3자’가 아니다. 박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그들이야말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작품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 그가 가장 많이 던진다는 질문을 되물어봤다. 작가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요? 전 저를 너무 좋아하죠. 거울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