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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넘은 MRI 진료비[횡설수설/우경임]

입력 | 2022-09-24 03:00:00


‘효도검진 자기공명영상(MRI) 이벤트’ ‘추석맞이 MRI 검사 20% 할인’ 동네 정형외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고다. 뇌·뇌혈관과 복부·흉부에 이어 올해 척추 MRI 검사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되자 병·의원들이 환자 유치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이 부담한 MRI 검사비는 1조145억 원으로 건강보험 적용 이전인 2017년에 비해 3.3배나 늘어났다.

▷2018년 도입된 ‘문재인 케어’는 MRI를 비롯해 로봇수술, 초음파 등 건강보험 적용 항목을 확대해 지난 20년 동안 60%대에 머문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는 내용이다. 보장률이 높아진다는 건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의료비가 늘고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평균 60만 원이었던 MRI 검사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평균 15만∼20만 원만 내면 받을 수 있게 됐다.

▷MRI 촬영 건수는 ‘문재인 케어’ 도입 이후 매년 두 배씩 폭증했다. 그동안 비용 부담에 검사를 망설였던 환자들이 쉽게 검사를 받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머리가 아프다’ ‘허리가 뻐근하다’고만 해도 MRI를 마구 촬영하는 지경이 됐다. 고가 MRI 장비를 구비한 병·의원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MRI 검사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공유지의 비극’이 벌어진다. 백내장 수술이 필수가 되거나 도수 치료로 정형외과 병상이 꽉 차는 것처럼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될 때마다 반복되던 현상이다.

▷202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로 매년 상승했음에도 ‘문재인 케어’의 당초 목표에는 못 미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의료 행위의 가격이 통제된다. MRI 검사비만 해도 큰 병원으로 갈수록, 기기가 비쌀수록 가격이 달라졌는데 이제는 일정한 수준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된 급여 진료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병원들은 비급여 진료를 계속 늘려 왔다. 새로운 기기나 시술을 도입하는 풍선효과로 비급여 진료가 줄기는커녕 5년간 200개 이상 늘어났다.

▷건강보험 덕분에 한국 의료의 ‘가성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술 한 번 받았다가 재난적 의료비에 시달리는 미국이나, 수술은 공짜인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영국 등에 비하면 한국만큼 의료 접근성이 좋은 나라는 없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이라고 마르지 않는 우물일 리 없다. 보험료도 가파르게 올라 이미 그 부담이 만만치 않다. 정말 아픈 환자들이 병원비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으려면 건강보험 지출 우선순위부터 조정해야 한다. 과잉 진료나 의료 쇼핑으로 곶감 빼 먹듯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일도 자랑이 돼선 안 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