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지난주, 백남준(1932~2006)의 ‘다다익선’이 4년 만에 재가동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중심을 지키던 다다익선에 드디어 불이 들어오게 된 거죠. 2018년, 다다익선은 일부 모니터가 고장 나 가동이 중단됐고 이듬해부터 복원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 복원 과정이 어땠는지 담당 학예연구사를 만나 들어봤습니다.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아트 소장품들의 보존 방법은 어떤지도 살펴봅니다. 미디어아트 작품을 주로 소장하는 기관에는 대개 테크니션(기술자)이 있습니다. 이들만 있으면 만사형통일까요? 미디어아트를 주로 담당하는 큐레이터와 미술관은 무엇 때문에 고군분투 중인 걸까요? 확인하러 가봅시다.
보존·복원 완료 다다익선(2022) ⓒ 2022. 우종덕
4년 만에 깨어난 다다익선, “인공호흡기 단 상태”
1988년 9월 15일, 다다익선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올해 같은 날, 다다익선은 약 4년 만에 재가동됐죠. 하지만 점등한 지 5분 만에 모니터 1대가 꺼지는 등 불안한 모습이었는데요. 국내 미디어아트 보존 처리 관련 성과를 입증할 행사였지만, 작품 자체는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나 마찬가지”라는 평을 받습니다.
‘원본 고수냐, 변환이냐’ 다른 비전 가진 세계 미술관들
백남준은 생전 작품의 외형을 신기술로 대체하는 데에 개방적이었습니다. 외형이 변해도 본질만 지키면 된다는 철학이었지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각 미디어아트 기관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변환 정도를 두고 각기 다른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다다익선, 그게 뭔데?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을 앞두고 백남준은 미술관으로부터 한 의뢰를 받습니다. 과천관 정중앙에 놓인 램프코어(각 전시장을 연결하는 나선형 공간)에 놓일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백남준은 설계를 맡은 김원 건축가와 함께 작업을 진행합니다.
다다익선은 높이 18m, 지름 7.5m의 철골 구조에 6¤25인치 모니터 1003개를 탑처럼 쌓은 작품입니다.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기 위해 1003개의 모니터를 사용했다고 하죠.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이기도 합니다. 이들 모니터에는 8개의 영상 작품이 나오는데요. 경복궁, 부채춤, 프랑스 개선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각국의 문화 상징물이 떠다니죠. 동양-서양, 과거-현재, 예술-과학의 조화를 꿈꾼 그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다다익선 건설 공사, 1988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영상만 그대로 보존되면 원본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모니터나 철골이 바뀐다면요? 실제 예전부터 가장 논쟁적이었던 것은 모니터입니다. 다다익선 원작이 사용하던 모니터는 ‘뚱뚱한 모니터’로 잘 알려진 삼성전자 기종의 CRT 모니터입니다. 이것을 LCD나 LED 모니터로 바꾸면 특유의 볼록한 볼륨감이 사라지죠. 그러면 원본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
최초 제막 당시 다다익선(1988).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다다익선 살리기
현재 CRT 모니터를 만드는 공장은 사라졌고, 시중에서 잘 판매되지도 않습니다. 이 경우, 미디어아트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원작과 동일 기종의 중고품으로 대체
▲최신 기술 적용
실제로 2003년 다다익선의 일부 모니터가 노후화되어 정상 가동이 불가능해지자 회색 구형 TV로 전부 교체했습니다. 당시 미술관은 삼성전자의 후원 등을 통해 다다익선 모니터를 모두 교체하는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는 백남준이 생존해있을 때라 작가의 양해 아래 진행됐죠.
하지만 그 후로도 고장과 수리가 반복됐고 결국 2018년 2월 가동을 중단합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작품을 계속 가동하면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상태”라 판단했고, 삼성이 후원한 동종 모니터는 이미 단종돼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2019년, 미술관은 국내외 전문가 자문을 거쳐 ‘보존·복원 3개년 계획’을 마련했고, 이 과정을 거쳐 이번에 다다익선은 재가동됐습니다. 그 과정을 담당자인 권인철 학예연구사의 입을 통해 들어봅시다.
-다다익선 보존·복원에 있어 가장 우선됐던 것이 무엇인가요?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되 일부 대체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중고품 CRT 모니터 확보가 가장 먼저 진행됐고, LCD 디스플레이도 확보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어땠습니까?
더 이상 사용이 어렵게 된 266대는 LCD로 교체했고, 나머지 737대는 크고 작은 수리와 교체가 진행됐습니다. 737대 중 41대는 확보한 중고품 CRT 모니터로 대체했고요.
-더 이상 사용이 어렵다는 266대가 상단의 6, 10인치 CRT 모니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나요?
크기가 작은 모니터일수록 발열에 취약하고, 그만큼 내구성도 떨어집니다. 6인치의 경우 겨우 1~2대 정도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중고 물량이 부족했고요. 10인치는 다다익선 전체 모니터 수량의 절반을 넘습니다. 중고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물량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CRT 모니터 확보 과정을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현재 다다익선용 CRT 모니터는 국내에서만 수급한 물량입니다. 서울 황학동 중고시장과 전국 재활용센터를 돌면서 600여대를 구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CRT 모니터를 모두 가져갔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발품을 팔았습니다. 현재 다다익선에 사용된 동일한 CRT 모니터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게 됐죠. 국내 말고도 미국, 중국 등을 오가며 동일기종이 아닌 대체 모니터를 확보하려 나섰습니다.
-모니터 외에 백남준의 영상에도 변화가 있나요?
네. 8개 영상의 경우 비디오테이프 버전에서 디지털로 변환했습니다. 8개 영상 원본은 그대로 보존하고, 디지털로 복원을 실시한 거죠.
-수리에 사용된 중고 제품도 생산된 지 오래라 언제든 수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예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모니터링과 보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우선 가동시간을 주4일, 하루 2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또 과열을 막기 위한 냉각 설비, 전기 설비 시설을 새로 교체했죠. 앞으로도 수시로 점검하고 대체 디스플레이 적용성을 계속 검토할 계획입니다.
원본 고수냐, 변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미디어아트의 보존·복원은 이미 세계적으로 대두된 문제입니다. 기술 발전이 워낙 빠르다보니 현 시점에서 가장 선두적인 기술과 제품을 사용했더라도 금세 구시대의 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다익선의 재가동은 국내 미디어아트 보존·복원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입니다.
2018년, 미국 휘트니미술관이 7년간 복원을 거쳐 내놓은 ‘세기말 II’(1989). 모니터를 LCD 모니터로 교체했다.
독일의 ‘예술과 미디어센터’(ZKM): 원본 유지
ZKM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원본을 고수합니다. 수명이 다한 미디어 작품의 TV들을 대체할 수천대의 TV들을 지속적으로 사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모니터나 비디오 플레이어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원본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구시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많은 비용을 들여 다시 복원하는 겁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디지털파일로 변환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는 식이죠.
일본의 NTT ICC(InterCommunication Center): 변형 가능
아시아 최대 미디어아트 기관은 ICC미술관은 창작자의 동의 하에 작품을 변형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ICC미술관은 미디어아트 작품을 사들일 때부터 구입 계약서와 보존·복원 설명서를 함께 작성합니다. 하드웨어의 경우 옛 제품인 브라운관 TV는 LCD, LED, OLED 모니터로 바꿀 수 있고요. 소프트웨어라면 옛 운영체제인 DOS를 Window로 변환할 수 있는 거지요. 시각적으로 원본을 해칠지라도 내면의 개념을 더 중시하는 겁니다.
영국의 뉴미디어아트 기관 FACT: 일부 변형 가능
영국의 FACT는 하드웨어는 원본을 유지하고, 소프트웨어는 변환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TV 케이스는 그대로 두고 뚱뚱한 모니터인 CRT 모니터를 평면 모니터인 LCD 모니터로 교체하는 식이죠.
이처럼 미디어아트 보존·복원 방식에는 정답이란 없습니다. 시대 변화에 맞게 맞춰가야 한다는 의견도, 원작의 고유성을 살리자는 의견도 모두 타당해보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