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현역’ 재즈보컬리스트 실라 조던
2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미국 재즈 보컬리스트 실라 조던(왼쪽)과, 그의 듀오인 베이시스트 카메론 브라운. 플러스히치 제공
알콜중독 어머니 밑에서 자란 유년시절의 아픔, 남편 없이 홀로 딸을 키워야 했던 싱글맘의 애환…. 150cm를 조금 넘는 아담한 체구에서 그를 거쳐 간 삶의 곡절들이 처연한 바이브레이션으로,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흘러나왔다.
‘더 크로싱’이란 자작곡에선 재즈의 힘으로 알코올과 약물 중독을 이겨낸 과정을 담담히 노래했다. 마지막 곡 ‘실라스 블루스’(Sheila's Blues)은 불행했던 어린시절부터 전설적인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만났던 찬란한 순간까지 그의 인생의 조각들이 담겼다. 삶 자체를 노래하는 거장에게 관객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94세의 실라 조던이 35세의 실라 조던을 마주했다. 23일 서울 중구 호텔방에서 만난 조던은 1963년 데뷔앨범 'Portrait of Sheila'의 표지사진 포즈를 똑같이 취해보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보컬리제(보컬을 이용한 즉흥연주)의 대가로 불리는 조던은 유명 연주자의 솔로를 보컬로 따거나, 공연 때마다 즉흥적으로 가사를 입혀 노래한다. 그는 2006년 맨해튼 카바레츠 클럽 협회(MAC) 평생 공로상, 2012년 미국 연방예술기금(NEA) 재즈 마스터 상을 받았다. 데뷔앨범 ‘Portrait of Sheila’(1963년)는 1939년 설립된 재즈 음반사의 명가 ‘블루노트’가 발매한 첫 재즈 보컬리스트 앨범이다.
23일 서울 중구의 호텔방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이 이렇게 화려한 도시인 줄 몰랐어요. 뉴욕과 정말 비슷해요. 물론 서울이 뉴욕보다 훨씬 안전할 테지만요.(웃음)”
●찰리 파커가 인정한 천재 재즈 뮤지션
무대에서 노래하는 실라 조던. 플러스히치 제공
“동네에서 저희 집이 가장 가난했고, 사람들은 우릴 무시했죠.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나아졌어요. 제가 좋은 귀를 가졌거든요. 라디오에서 들은 멜로디를 그대로 기억해서 악보에 옮긴 뒤 노래로 불렀죠. 엄마는 제가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으앙’하고 울지 않고 ‘워우’라며 노래를 불렀다고 했어요. 저는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어요.”
24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선 실라 조던. 플러스히치 제공
“10대 후반 디트로이트의 한 클럽에서 파커의 공연을 처음 봤어요. 당시 제가 재즈 보컬 트리오로 활동한다는 걸 안 파커가 ‘여기 재즈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있다면서요?'라며 공연 중간에 저흴 무대 위로 불렀어요. ‘누구지?’ 하며 두리번거리자 ‘그래, 거기 너네!’라며 저흴 지목했죠. 무대에 올라 파커의 노래 중 하나를 불렀고, 무대가 끝난 뒤 파커는 제게 와서 ‘꼬마야, 너는 백만 달러짜리 귀를 가졌구나’라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파커의 음악이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 제 소명이 됐습니다.”
●알콜중독, 마약중독의 수렁에서 그녀를 구한 재즈
서울 중구에 위치한 그녀의 호텔방에서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즐거워 하는 실라 조던.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술을 못 마시냐구요? 저희 엄만 알코올중독으로 죽었어요. 이모 한 명을 빼고 저희 가족 전부 알코올중독이었어요. 저는 한 모금만 마셔도 술에 대한 갈망이 끓어요. 한동안 술과 마약에 빠져 살다가 노래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재활센터에 들어갔죠.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지 48년이 됐네요. 음악이 아니었다면 전 지금쯤 죽었을 거에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눈을 감은 실라 조던. 그는 인터뷰 내내 "재즈 음악, 찰리 파커의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이 삶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난 팝스타가 되려고 한 게 아니에요. 그런 류의 성공을 얘기하는 거라면 난 성공하지 못한 게 맞아요. 하지만 내 음악은 재즈에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재즈 음악을 계속 살아 숨쉬게 하는 것, 그게 전부에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