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퇴근 후 ‘e메일 응답 스트레스’, 어떻게 줄일까[Monday DBR/곽승욱]

입력 | 2022-09-26 03:00:00


미국 직장인 1515명이 참여한 설문 조사 결과, 주말이나 저녁 늦은 시간 등 업무 시간 외에 주고받는 e메일이 전체 e메일의 51.1%로 밝혀졌다. 업무 시간 외의 e메일이라 즉시 회신할 필요가 없음에도 76%가 1시간 내, 32%가 15분 내 회신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업무 시간 외에 주고받는 e메일은 직장인들에게 피로감을 일으키고 워라밸을 무너뜨린다. 직장인들이 번아웃에 빠지거나 생리적, 감정적, 정신적 소진 상태에 이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 직장인들은 퇴근 이후에도 e메일을 손에서 뗄 수 없는 것일까. 영국 런던경영대 연구진은 직장인들이 ‘e메일 긴급성 편향(EUB·Email Urgency Bias)’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신자는 발신자가 기대하는 회신 속도를 과대평가해 e메일을 신속히 읽고 답해야 한다는 과도한 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EUB가 직장인의 ‘항시 대기 상태’를 조장하고 행복을 저해하는 원인임을 밝혀내고, 그에 대한 ‘넛지(nudge·부드러운 개입으로 행동 변화를 이끄는 것)’식 해결책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스페인과 미국의 직장인 3308명을 수신자와 발신자로 나눠 서로 e메일을 주고받는 직장 동료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발신자들은 수신자들에게 긴급한 회신을 요구하는 e메일과 긴급하지 않은 e메일을 보냈다. 연구진은 설문 조사를 통해 참여자들이 얼마나 빨리 회신을 하거나 또는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지와 더불어 참여자들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 스트레스 정도 등을 파악했다.

실험 결과, 긴급한 회신이 필요치 않은 e메일을 받았을 때 수신자는 발신자가 기대하는 회신 속도보다 평균 약 1.4배 더 빠르게 회신해야 한다고 믿었다. 발신자가 실제로 기대하는 회신 속도가 1시간일 때 수신자가 생각하는 발신자의 회신 예상 속도는 약 43분이라는 뜻이다. 긴급한 회신이 필요한 e메일을 받은 경우엔 이런 상황이 더 심했다. 수신자의 예상 회신 속도는 긴급하지 않은 e메일 수신자에 비해 약 1.5배가 더 빨랐다. 발신자의 기대 회신 속도가 1시간일 때 수신자의 예상 회신 속도는 29분, 즉 발신자의 기대보다 2배 빨리 회신해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수신자가 느끼는 예상 회신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점점 더 커졌다. 역으로 워라밸과 전반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는 하향 곡선을 그렸다. 업무 시간과 비업무 시간 사이의 차이도 명확했다. 업무 시간에 주고받은 e메일에 대한 수신자 예상 회신 속도는 비업무 시간의 예상 회신 속도보다 약 1.4배가 빨랐다.

연구진은 발신자가 자신이 기대하는 회신 속도를 분명히 언급하는 작은 조정을 통해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긴급한 회신이 필요한 e메일이 아니니 시간 날 때 회신 부탁합니다”라는 짧지만 명확한 문구가 추가되자 수신자와 발신자 간 기대하는 회신 속도의 격차가 사라졌다. 스트레스는 줄고 행복도가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도 뒤따랐다.

e메일 소통에서 수신자와 발신자의 기대는 사뭇 다르다. 이는 발신자가 수신자의 심리적 영역을 의도치 않게 침범해 수신자가 조급해지는 원인이 되고, 수신자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한다. 일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어 워라밸을 무너뜨리고 삶에 대한 만족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e메일은 사용자에게 더 많은 통제력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문명의 이기가 돼야 한다. 수신자를 ‘항시 대기 상태’로 내몰고 강박감에 시달리게 하는 구속의 수단이 돼선 안 된다. 다행히 이런 문제는 발신자가 e메일 회신의 긴급도를 명확하게 알리는 ‘넛지 메일’을 보낼 경우 상당 부분 해소된다. 또한 수신자 스스로 예상 회신 속도에 대한 강박감을 줄이려는 훈련도 필요하다. “바로 회신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는 e메일을 하루 한 통 자신에게 보내는 건 어떨까.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52호(2022년 9월 1호) “‘바로 회신 안 해도 괜찮다’고 해보세요”를 요약한 것입니다.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swkwag@sookmyung.ac.kr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