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범죄 늘며 부검의뢰 급증, 건수 2017년 49건→작년 228건 필요성 커지는데 전담인력은 2명뿐 “동물부검 전문가 양성과정 마련을”
경찰은 올 6월 경북 포항시 한동대 일대에서 길고양이 7마리를 학대 끝에 죽인 혐의로 30대 남성 A 씨를 체포했다. 하지만 체포된 A 씨는 범행을 인정하지 않은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범행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에는 그가 범행 현장을 드나드는 모습은 담겨 있었지만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은 없었다.
A 씨가 ‘고양이 사체를 발견하고 훼손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경우 반박할 근거가 없었던 경찰은 궁리 끝에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에 사체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 ‘살아있는 상태에서 학대를 당한 끝에 죽었다’는 회신을 받고 추궁한 끝에 A 씨가 고양이들을 발로 밟는 등 엽기적으로 학대해 죽인 사실을 밝혀냈다. 21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A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최근 동물 학대 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동물 사체 부검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2017년 49건이었던 부검 건수는 지난해 228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1∼8월 기준으로 235건에 달한다.
올 7월 대구 남구에선 다수의 고양이를 집에 가둬 놓고 방치해 죽게 한 20대 여성 B 씨가 붙잡혔다. 그러나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얼마나 고양이를 방치했는지, 총 몇 마리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검역본부는 부검을 통해 고양이가 총 17마리 있었고, 4월부터 방치된 고양이들이 극도의 배고픔 속에서 동족을 해쳤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부검이 묻힐 뻔한 사안의 심각성을 드러낸 것이다.
동물 부검의 유용성을 확인한 서울경찰청은 올 6월 “동물 사체 부검을 적극 의뢰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하지만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서 동물을 부검하는 곳은 검역본부 질병진단과뿐인데, 담당 수의사는 2명에 불과하다. 독성 검사의 경우 장비가 없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야 하는 실정이다. 이에 검역본부는 본부 내 동물 부검을 전담하는 ‘수의법의학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최민경 정책팀장은 “동물 학대는 늘고 있는데, 국내는 동물 부검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