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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쉬는 시간에도 정원 산책… 집보다 더 집같은 학교”

입력 | 2022-09-26 03:00:00

‘서울시 건축상’ 신길중 만든 이현우 건축가
빽빽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속 옹기종기 집들 모인 마을처럼 보여
22채 독립공간 막힌 곳 없이 연결… 층수 달리해 옥상이 다른 동 마당
19개 중정, 학생들 놀이터이자 쉼터… 학생들 스스로 공간 활용법 찾아



서울 영등포구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신길중학교는 전원주택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처럼 보인다(위 사진). 이 학교를 설계한 이현우 건축가는 24일 “못 보던 사이 옥상 정원에 아이들이 심은 해바라기꽃들이 자랐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간을 채워 나가는 모습을 보니 건축가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건축문화제 제공·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서울 도심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게 학교라고?”

지난해 3월 개교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학교를 보면 누구나 절로 감탄이 나온다. 주변은 신길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2017년부터 아파트가 4000채 넘게 들어섰다. 아파트가 숲을 이뤘지만 학교 풍경은 삭막하지 않다. 한적한 전원에 세워진 미술관도 이만큼 어여쁠까 싶다. 신길중은 최근 ‘서울특별시 건축상’에서 완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학교에서 24일 만난 이집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이현우 건축가(54)는 2018년 서울시교육청 주최한 설계공모전에 참가할 때부터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당시 아파트는 재건축이 한창이었죠. 거대한 단지 아래 아이들이 ‘덩어리의 일부’로 살아가겠단 우려가 생겼어요. 위압적인 건물 틈에서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란 얼마나 어렵겠어요. 학교라도 반대로 가보자 싶었죠.”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인 신길중은 하나의 건물이지만 얼핏 보면 옹기종기 집들이 모인 마을처럼 보인다. 실제 22구역으로 공간이 나눠져 있으나, 앞마당을 서로 맞댄 채 연결돼 있다. 이 건축가는 “크게 전체 3개 동으로 구분된 구역도 기다랗게 이어져 있다”며 “각 동은 층수를 달리 해 한 동의 건물 옥상이 다른 동 마당이 돼 준다”고 설명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옥상을 포함해 곳곳에 배치된 중정(中庭·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이다. 무려 19군데에 중정을 지었고, 모든 마당은 교실에서 통유리창으로 보인다. 문을 열고 나서면 곧장 따사로운 볕도 쬘 수 있다. 이 건축가는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에 운동장까지 나가 햇살을 즐기긴 무리”라며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면 가슴이 뻥 뚫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런 설계는 의외의 선순환도 낳았다. 학교에서 종종 문제의 온상이 되곤 했던 옥상이 모두에게 개방된 놀이터이자 쉼터가 됐다. 층마다 여러 곳에 중정이 있다 보니 특정 무리가 공간을 독점하는 일도 사라졌다. 개방적인 장소라 사각지대도 없다.

이 건축가는 모든 중정의 생김새를 달리했다. 1층 도서관 앞은 단풍나무를 심어 야외에서 독서를 즐길 수 있고, 벽돌 바닥으로 지은 테라스는 학생들이 둘러앉아 수다 떨기에 맞춤이다. 이 건축가는 “크고 작은 중정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공간을 활용하는 법을 찾길 바랐다”고 했다.

교실을 포함한 22채의 독립공간은 막힌 곳 없이 모든 길로 통한다. 재밌는 점은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한 동에서 다른 동으로 갈 때, 바쁘면 곧장 계단과 복도로 가면 된다. 하지만 여유가 있다면 나무와 잔디가 심어진 중정 등으로 산책하듯 돌아갈 수 있다. 이 건축가는 “삶의 목적지로 가는 길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걸 몸으로 이해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물 외형도 뾰족한 박공지붕과 평평한 지붕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었어요. 교실 천장도 그에 맞춰 서로 다르게 했고요. 학생들이 다름이란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바랐거든요. 아이들이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직접 가꾸며 학교의 진짜 주인이 되면 좋겠어요.”

이 건축가의 소망은 이미 상당히 이룬 듯했다. 아이들이 직접 가져다놓았다는 앙증맞은 화분들이 교실 옆을 수놓았고, 잔디밭 중정 난간엔 손수 만든 바람개비들이 알록달록 돌아갔다.

“요즘은 학생들이 중정 잔디밭에서 씨름도 한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데, 하하. 역시 아이들은 제가 상상한 것보다 더 대단해요. 어떻게 하든 그건 학생들 마음이죠. 그게 진짜 학교 아닐까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