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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한국 혁신환경 50점 이하… 국회는 낙제점”

입력 | 2022-09-26 03:00:00

[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
3부 공정한 혁신 성장의 길〈3〉기업은 100마일, 국회는 3마일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들은 한국의 전반적인 혁신 환경이 50점 수준을 밑돌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25일 동아일보가 국민대 혁신기업연구센터(센터장 김도현)와 함께 국내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 국내외 주요 기업 36곳을 대상으로 ‘혁신기업의 역량과 규제 환경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업들은 한국의 혁신 환경에 대해 평균 2.41점(5점 척도·매우 나쁨은 1점, 매우 좋음은 5점)을 줬다. 정부(2.38점)와 국회(1.86점)의 역할에 대해선 더 박한 평가를 내렸다. 특히 국회에 대해 ‘좋음’(4점) 이상의 긍정 평가를 내린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기업들은 ‘혁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와 규제 환경’(24곳)과 ‘사회적 갈등 조율 능력 부족’(11곳) 등 때문에 한국에서 혁신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김주희 국민대 혁신기업연구센터 연구본부장은 “혁신이 기존 질서와 충돌할 때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중재를 하지 못하는 데 기업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엔 굼뜨고 갈등조율 능력 부족… 정부 2.4점, 국회 1.9점”


주요 IT-플랫폼 기업 36곳 설문, 국회 긍정평가 내린 기업 ‘0곳’
‘포퓰리즘 입법’ 지적 가장 많아
“대안 제시보다 서비스 중단 규제… 사회갈등 푸는 정부 노력 1.97점”
전문가 “규제 개혁 전담기구 둬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기업이 시속 100마일 속도로 변할 때 정부는 25마일, 국회는 3마일로 달린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한국의 혁신 환경에 대해 ‘나쁘다’(2점)고 답한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느끼는 불만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규제 환경의 더딘 변화 속도’와 ‘갈등 조율 능력 부재’다.

원격의료와 핀테크는 규제 환경의 더딘 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우버, 타다 등은 택시업계와의 갈등 조율 능력 부재로 혁신 좌절을 겪었다. 강남언니, 로톡, 삼쩜삼 등 전문 서비스 플랫폼도 관련 전문직 단체와 갈등을 겪었거나 여전히 겪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혁신이 좌절되는 상황에 대해 동아일보와 국민대 혁신기업연구센터는 주요 기업 36곳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IT 기업, 제조업·금융·모빌리티 등에서 혁신기술을 제공하는 기업, 다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이나 사업 모델을 개척한 기업, 외국계 IT 기업 등을 조사했다.
○ 혁신에 굼뜬 국회와 정부

한국의 혁신 환경의 장점으로 응답기업 36곳 중 21곳은 ‘정보통신 시스템 등 인프라’를, 11곳은 ‘풍부한 인재풀, 우수한 인력양성 체계’를 들었다. 또 스스로의 혁신역량에 대해 평균 3.91점의 높은 점수를 매겼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각각 2.38점과 1.86점을 줘 아쉬움을 나타냈다.

혁신 활동과 관련한 국회의 역할에 대해 응답기업 36곳 중 23곳(이하 복수선택)이 ‘정치적 계산과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입법 활동 경향’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어 ‘개별 사안을 중심으로 한 규제 남발과 누더기 법률’(17곳), ‘부작용이나 양면성을 고려하지 않는 규제 및 법안 설계’(16곳) 순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기업 관계자는 “이용자의 편익이 비이용자의 불편보다 큰 경우에도 부정적 여론이 조성된 즉시 업계나 전문가 의견은 묵살된 채 강력한 규제가 발동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회가 신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이해관계자 한쪽에 치우친 탓에 대체로 부작용을 해소할 대안이 아닌, 사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규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응답기업 관계자는 “정부, 국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적은 데다 어렵게 의견을 전달해도 ‘기업의 이익만 고려한 의견’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혁신을 제약하는 정부의 규제 환경에 대해서는 응답기업 36곳 중 22곳이 시행 가능한 서비스와 사업을 법에 열거하는 ‘포지티브 규제’ 기조를 가장 문제로 꼽았다. ‘과도한 재량권 행사나 가이드라인, 지침 등의 그림자 규제’(19곳)와 ‘부처 간 규제 관할권 다툼과 규제권을 힘으로 생각하는 인식’(19곳)이 뒤를 이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별 규제의 존폐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네거티브 규제’ 관련 선언을 하거나 기본법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앞서 나가야 개별 규제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리빈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도 “유럽은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장기 비전을 내놓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 각국이 관련법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한국도 규제 혁신 전담기구를 통해 강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적 부작용 ‘기업 탓’에 혁신과 상생 모두 놓쳐
기업들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혁신 환경의 문제점으로 응답기업 36곳 중 33곳이 ‘갈등 상황 등에서 실질적 이해당사자 대신 일부 이익단체의 주장이 주로 부각되는 상황’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는 응답기업들은 1.97점(5점 척도)의 낮은 점수를 줬다. 한 응답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을 모두 기업에 대한 책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때문에 신사업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은 혁신 활동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 충돌 등 소통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에 대해 평균 3.03점을 줬다. 하지만 노력에 대한 효과는 2.26점이라고 평가했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기업 스스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고 평가한 것이다.

유효상 차의과대 경영학과 교수는 “혁신기업 상당수가 기존 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탓에 갈등은 불가피하고, 혁신의 대상인 기존 이해관계자들도 생존을 건 저항을 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혁신 모델에 대한 연구와 이해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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