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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세 블랙핑크의 성공 법칙 3가지

입력 | 2022-09-27 03:00:00


YG 제공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8월 19일, 블랙핑크는 약 한 달 후 발매되는 정규 2집 ‘BORN PINK(본 핑크)’의 선공개 곡으로 ‘Pink Venom(핑크 베놈)’을 내놓았다. 그들은 “데뷔한 순간부터 반전이 우리의 매력이었다”며 “‘예쁜 독’이라는 의미 자체가 우리를 표현하는 가장 가까운 단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정규 2집이 더 기대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찬 포부처럼 블랙핑크는 세계 음악 시장을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지난 8월 29일 미국의 주요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2022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2관왕(베스트 메타버스 퍼포먼스·베스트 K팝 부문 상)을 차지했다. 며칠 뒤 9월 3일에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 ‘핑크 베놈’이 22위로 진입했다. 이와 함께 9월 16일 정규 2집 정식 발매 첫날에는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54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기대감 키우는 희소성 전략


연일 겹경사를 알려온 블랙핑크지만 평소에는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그룹이다. 일단 완전체 컴백 자체가 뜸하다. 이번 ‘핑크 베놈’ 또한 정규 1집 ‘THE ALBUM(더 앨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선보인 곡이다. 지난 2016년 8월 8일 데뷔한 이래 이번 정규 2집까지 블랙핑크가 낸 음반은 7개로, 총 노래 수는 리믹스 2곡을 포함해 31곡에 불과하다.

1년에 두세 번 컴백하는 게 흔한 요즘 아이돌 생태계에서 블랙핑크의 희소성 전략은 모험에 가깝다. 대중에게 잊힐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플릭스 최초 K팝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Blackpink: Light Up the sky)’에서 블랙핑크의 프로듀서 테디는 “팬분들이 ‘더 많이 원해’라며 화내는 건 안다. 보여드릴 건 많지만 어떤 걸 보여드릴지는 아주 까다롭게 정한다”며 컴백이 뜸한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블랙핑크는 콘셉트 브레인스토밍부터 최종 스타일링까지 창작 과정의 모든 단계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고르고 골라 싱글곡 위주로 활동하는 방식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팬들에게는 갈증을 안기지만 대신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고 신곡 발표 때마다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게 만든다.

이번 정규 2집 선공개곡 발표 후에도 “선공개곡 성적이 이 정도면 타이틀곡은 더 대단하겠다”는 기대가 대다수였다. 간혹 이번 곡이 자기복제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있었으나 “앨범 모든 곡이 블랙핑크의 새 역사를 쓸 결정체지만 특히 타이틀곡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하다”란 YG엔터테인먼트의 호언장담에 여론이 바뀌었다. 결국 선공개곡 발표 이후 타이틀곡이 나오기까지 화제성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은 전략이다.

블랙핑크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 속 장면. 유튜브 캡처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비주얼


블랙핑크의 영리한 ‘밀당’은 또 있다. 블랙핑크는 곡은 간추릴 대로 간추려 발표하지만 보여줄 때는 인색하지 않다. 9월 16일 공개한 이번 신곡 ‘Shut Down(셧 다운)’ 뮤직비디오의 경우 YG 창사 이래 최대 제작비가 투입됐다. 또 예전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한 장면들을 곳곳에 숨겨놓아 찾는 재미를 더했다.

시각적으로 민감하고 영상에 친숙한 요즘 세대를 제대로 취향 저격한 덕분에 블랙핑크는 각종 신기록이 증명하는 ‘유튜브 퀸’이다. 9월 5일 블랙핑크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8000만을 돌파했다. 전 세계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 최초이자 최고 수치이며, 해당 채널에서 억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만 33편이다.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 속 고급스러우면서도 힙한 이미지는 음악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게 만든다. 군무가 잘 보이게 만든 안무 영상은 팬들의 자발적인 커버댄스 영상을 낳는다.

이 같은 유튜브 퀸의 파급력을 알아본 패션계도 블랙핑크와 사랑에 빠졌다. 블랙핑크는 전 멤버가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다. ‘인간 샤넬’ 제니부터 생로랑·티파니앤코의 로제, 지수는 디올·까르띠에, 리사는 불가리·셀린의 앰배서더다. 그러다 보니 공개 일주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2억을 돌파한 이번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는 움직이는 화보 그 자체였다. 샤넬의 점프슈트와 레인부츠, 반지를 비롯해 디올의 크롭트 톱과 니삭스, 까르띠에 귀걸이와 반지, 셀린 크로셰 해트와 벌키 레이스업 부츠, 불가리 반지, 티파니 목걸이 등이 총출동했다.

물론 비주얼에 신경 쓴다고 해서 블랙핑크가 늘 화려한 이미지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전통문화 요소들을 그들만의 색깔로 힙하게 재해석하는 데 능하다. ‘하우 유 라이크 댓’ 뮤직비디오에서는 김단하 디자이너의 개량 한복을 입고, ‘핑크 베놈’에서는 미스소희의 한복 드레스에 얹은머리, 자개 무늬 네일 아트 같은 한국의 미를 가미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실력은 기본, ‘나는 나’라는 자신감


블랙핑크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 속 장면. 유튜브 캡처

블랙핑크의 실력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이 무대 매너다. 무대에서 제대로 놀 줄 아는 블랙핑크는 지난 2019년 4월 12일 K팝 걸 그룹 최초로 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코첼라)에 초대받기도 했다. 약 1시간 동안 총 13곡을 선보인 이날 공연에 대해 외신들은 “관객 가운데 누가 하드코어 팬이고 일반 관객이었는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적극적인 찬사를 보냈다”(‘버라이어티’), “모던 힙합, EDM, 발라드, 록 등 다양한 음악 스펙트럼을 소화하는 그룹인 만큼 이들을 코첼라에 초대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LA타임스’)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코첼라 이후 블랙핑크는 한층 글로벌하게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두아 리파,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성도 확보했다.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는 150만 관객을 동원하는 역대급 규모의 월드 투어를 진행할 예정. 10월 15·16일 서울에서 포문을 열며 북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현지 팬들을 만난다. 코첼라로 블랙핑크가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 것처럼 이번 스타디움급 월드 투어는 블랙핑크에게 중요한 시험 무대다. 무엇보다 얼마 전 데뷔 6주년을 맞은 블랙핑크는 내년 8월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성공리에 월드 투어를 마치고 분위기를 이어 ‘마의 7년’ 고비까지 넘을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블랙핑크 멤버들에게 달렸다.

다만 기대를 걸어봄 직한 대목은 처음부터 철저한 기획과 수년간의 연습 끝에 ‘완성형 아이돌’로 데뷔한 블랙핑크는 자신들이 왜 사랑받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마저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커버를 장식한 미국 음악 잡지 ‘롤링스톤’ 6월호 인터뷰만 봐도 알 수 있다. 1967년 잡지 창간 이래 표지에 걸 그룹이 등장한 건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미국의 ‘데스티니스 차일드’에 이어 세 번째다. 부담스러울 법한 자리에서 블랙핑크는 덤덤히 말했다.

“블랙핑크의 힙합은 세상이 이전에 보지 못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온 배경이 서로 다른 20대 소녀 4명이 힙합을 기반으로 대중음악을 엮어가고 있어요. ‘진짜 힙합’을 하는 미국의 멋진 래퍼들 눈에는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우리 힙합은 반항적이지는 않지만 멋진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힙합이냐고요? 저도 몰라요. 그냥 멋진 음악이에요.”(제니)

“부모님은 저를 자랑스러워하시지만, 저는 제가 월드 스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의 연습생과 다를 바 없어요. 제 위치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냥 저예요.”(지수)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imyunh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