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부 차장
나라 안팎에서 이어지는 정부여당의 ‘삽질’에 더불어민주당이 잔뜩 신이 났다. 공식석상에서 “총선 승리” “재집권”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애써 외면하던 선거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보고서들도 뒤늦게 나오고 있다. 민주당 특유의 ‘오만’이란 고질병이 스멀스멀 도지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는 연일 전국을 돌며 지역 공항과 공공의대 설립 등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민주당이 여당 시절에도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이다. 야당이 됐으니 ‘안 되면 여당 탓’을 하려는 심산이다.
잠잠하던 ‘상왕’들도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9·19 군사합의 4주년 토론회 축사에서 “정부가 바뀌어도 남북 간 합의는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며 현 정부 정책에 불만을 드러냈다. 정치 훌리건의 원조 격인 ‘대깨문’을 양산해낸 장본인답게 또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최근 낸 회고록에서 대선 패배 원인으로 ‘기득권 카르텔’을 지목했다. ‘이재명은 훌륭한 후보였는데 한동훈 등 검찰 카르텔 때문에 졌다’는 주장이다. 직전까지 민주당이 여당이었는데 누가 누구더러 기득권이라는 건지 황당하다.
이렇듯 민주당은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 대신 아직도 자기들끼리만 제2의, 제3의 대선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이 여전히 망해가고 있는 이유다. 정부여당이 아무리 못해도 민주당으로 그 반사효과가 오진 않는다. 지난주 영빈관 신축부터 해외 순방까지 온갖 난리 속에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은 34%(한국갤럽·9월 4주차)로 동률이었다. 반면 3월 말 17%였던 무당층 비율은 지난주 27%까지 치솟았다. 대선 이후 최고치다. 윤석열도, 국민의힘도 싫지만 민주당도 여전히 싫다는 거다.
최근 만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여당이 이렇게 못할 땐 민주당이 먼저 ‘우리 정치가 너무 못나서 죄송하다’고 납작 엎드리고 쇄신해야 하는데 ‘이재명의 민주당’이 그럴 것 같진 않다”고 체념한 듯 얘기했다. 6선의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도 페이스북에 “우리가 대선에서 진 게 한동훈 때문이냐”고 푸념했다. “망할 땐 확 망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지금이 제일 위기”라는 어느 당 원로의 자조 섞인 말이 정답인 듯하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