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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라면을 넘어… 농심, 비건-대체육 시장서 두각

입력 | 2022-09-28 03:00:00

가치소비에 맞춰 미래 먹거리 발굴
건강-환경 중시 MZ세대 입맛 공략
과자 만들던 공법으로 대체육 개발
콜라겐 등 건강기능식 사업도 확대



5월 농심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월드몰에 오픈한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에서 직원이 프리미엄 메뉴를 손님들에게 서빙하고 있다. 이 레스토랑은 식물성 대체육 등을 사용하면서 요리로서도 완성도를 높인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심 제공


최근 환경 보호, 동물 복지, 건강관리 등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비건(채식) 식품을 비롯해 대체육, 건강기능식품(건기식) 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전통 식품기업인 농심 역시 라면에 편중된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가치소비 트렌드에 발맞춘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7월 신동원 농심 회장 취임 이후 그룹의 라면 외 신성장동력 발굴에 속도가 붙고 있다.
○ 트렌드 담은 채식 사업

올해 5월 농심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Forest Kitchen)’을 열고 채식 사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의 비중을 서서히 늘리면서 건강과 환경을 지키려는 젊은 세대의 수요를 겨냥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농심 관계자는 “육류 생산 및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비건 푸드가 친환경 식품으로서 각광받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트렌드는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포리스트 키친은 환경을 생각하고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20∼40대 사이에서 주목을 받으며 오픈한 지 석 달 만에 화제성, 전문성, 글로컬리즘(세계화+지역화)을 두루 평가하는 서울시 100대 식당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비건 식당이 빠르게 시장에 안착하고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까닭이 단순히 ‘착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차별화된 시장 포지셔닝도 그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채식 식당이 햄버거, 파스타 등 일상에서 쉽게 보는 메뉴를 앞세워 경쟁하는 데 반해 포리스트 키친은 처음부터 프리미엄 메뉴들을 앞세워 차별화를 꾀했다. 비건 등 새로운 식품 트렌드를 선도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파인 다이닝이나 오마카세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 이 세대가 색다른 경험과 환경을 생각한 가치소비에 지불 의사가 높다는 점을 고려해 프리미엄 전략을 쓴 것이다. 농심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파인 다이닝 콘셉트의 비건 메뉴를 제공하기로 한 이유다.

아울러 이 비건 식당의 또 다른 특징은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만을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리 자체의 완성도를 높여 MZ세대 전반, 비건이 아닌 소비자까지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레스토랑 예약 애플리케이션 후기 등을 볼 때 포리스트 키친을 방문하는 고객 가운데는 비건이 아닌 소비자도 많다.
○ 대체육의 테스트베드
농심은 핵심 신성장동력으로 밀고 있는 대체육 사업도 이 비건 식당에 접목했다. 비건 식당이 대체육 사업을 위한 일종의 테스트베드가 된 셈이다. 실제로 농심은 지난해부터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체육을 그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 공장식 도축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 등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수록 대체육 개발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베지가든의 대체육은 해외에서 설비를 들여오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HMMA(High Moisture Meat Analogue·고수분 대체육 제조기술) 공법으로 만들어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은 물론이고 고기 특유의 육즙까지 그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대체육 독자 개발을 뒷받침한 동력은 농심이 50여 년간 쌓아온 식품 연구개발(R&D) 기술력이다. 대체육은 콩 단백질 분말을 고온·고압의 조건에서 성형 틀에 통과시켜 뻥튀기처럼 뽑아내는 원리로 만들어진다. 이후 냉각을 하면 고기와 같은 결이 생겨 대체육이 완성된다. 농심에 따르면 이렇게 고온·고압에서 재료의 맛과 향을 유지하고 원하는 모양과 질감을 만들어내는 사출 기술은 바나나킥 같은 스낵을 만드는 원리와 흡사하다. 라면, 과자를 만드는 회사가 대체육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같은 원천기술이 있다.

농심은 자체 보유한 이 대체육 핵심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포리스트 키친의 3가지 요리를 대체육 메뉴로 개발했다. 그간 축적한 기술력에 미국 뉴욕 미슐랭 1, 2스타 레스토랑 출신의 셰프가 쌓은 노하우를 접목한 것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과 대체육의 조화를 최대한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각각의 메뉴에 스토리를 입혔다는 게 농심의 설명이다.
○ 건기식으로 진출
이처럼 새로운 식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쏠림이 심했던 라면 위주 사업 구조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농심의 시도는 다양한 영역으로 진화 중이다. 건기식도 그중 하나다. 농심은 2020년 3월 건기식 ‘라이필 더마 콜라겐’ 시리즈를 출시해 약 2년 만에 누적 매출액 약 700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22년 8월에는 프로바이오틱스 신제품 ‘라이필 바이탈 락토’도 선보이는 등 제품군을 넓히고 있다. 이 같은 사업 역시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고민한 결과라는 점에서 비건, 대체육 사업과 맥을 같이한다. 농심 관계자는 “라이필을 종합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로 본격적으로 육성하는 한편으로 수면의 질 향상과 기억력 개선 등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신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