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운드화는 미국 달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유로, 일본 엔화에 이어 4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다. 그러나 영국은 경제력으로는 독일보다도 작아 유로존 전체에 큰 격차로 뒤떨어지고, 일본처럼 세계 최대 순채권국도 되지 못해 파운드화는 달러 가치 변동에 유로나 엔화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1파운드는 1940년만 해도 4.03달러에 고정돼 있었다. 1949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30% 절하돼 2.8달러에 거래됐다. 1960년대 파운드화는 절하 압력을 받아 2.4달러까지 내려갔다. 가장 큰 위기는 1976년에 일어났다. 노동당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적자가 커졌다. 금융시장은 파운드화가 과대평가돼 있다고 봤다. 노동당 정부는 파운드화 가치의 자유 낙하를 허용하든가 아니면 긴축을 약속하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결국 후자를 택했다.
▷파운드화는 1985년 1.03달러까지 떨어져 바닥을 쳤다가 보수당 마거릿 대처 총리의 통화주의 정책이 뒤늦게 효과를 보면서 1989년에 1.7달러까지 올랐다. 대처는 1990년 파운드화의 안정을 위해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 가입했다. 그것은 1파운드를 2.95마르크 주변에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가 보유 외환을 풀어 인위적으로 환율을 유지하는 걸 눈치 챈 투기세력의 공세로 환율이 치솟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그것이 1992년 9월 16일 ‘검은 수요일’이다. 영국은 ERM에서 탈퇴했다.
▷영국이 다시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국채금리가 유로존의 병자(病者) 국가인 이탈리아나 그리스보다 높아졌다. 국가부도 위험이 그만큼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때의 늘어난 재정을 유지하고 거기에 더해 감세 정책까지 펴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무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외인(外人)들이 원화를 팔아치우는 공세가 시작되면 그것이 퍼펙트 스톰이다. 한국 같은 나라가 대비하는 길은 국가부채를 평소 낮게 유지하고 외환보유액을 쌓을 수 있는 만큼 많이 쌓는 것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