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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진입한 韓 무기… “성능은 같은데 유지비는 절반” [인터뷰]

입력 | 2022-09-28 03:00:00

FA-50 수출 담당이 말하는 ‘K방산’의 성공 비결




23일 만난 이봉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출혁신센터장이 FA-50이 폴란드에 수출되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며 “K방산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국이 폴란드와의 대규모 무기수출 계약으로 ‘방산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

지난달 미국 CNN 방송은 한국 방위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 7월 폴란드는 한국으로부터 K2 전차(980대), K9 자주포(670문), FA-50경공격기(48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순차적으로 본계약을 체결해왔다. 1971년 국방과학연구소가 박격포 등 화기(火器) 개발을 시작으로 자주 국방에 시동을 건 지 50여 년 만에 한국의 방위산업은 초음속 항공기를 만들어 수출할 만큼 성장한 것이다.

이번에 폴란드가 구매한 FA-50 경공격기는 2006년 개발이 완료된 한국 최초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계열이다. T-50 개발 과정에 엔지니어로 참여했고, 그로부터 개량된 FA-50의 수출을 담당한 이봉근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출혁신센터장을 23일 만나봤다. 》

―초음속 항공기 개발부터 수출까지 그 역사를 같이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2003년 2월 사천 비행장을 이륙한 T-50 고등훈련기가 4만 피트 상공에서 초음속 비행으로 진입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시험 비행에서 약 20만 개 부품이 한 치의 오류 없이 착착 작동한 건 기적과 다름없었다. 각각 부품이 잘 작동되더라도 항공기로 통합·운영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밤샘 연구를 같이했던 엔지니어끼리 부둥켜안고 벅찬 감동을 나눴다.”

―T-50 개발을 왜 기적이라고 하나.

“록히드마틴으로부터 F-16을 구매하는 대가로 초음속 항공기 설계·제작 기술을 전수받기로 했다. 1992∼1996년 국방과학연구소 황매팀과 삼성항공 설계팀이 미국 텍사스로 가 기술을 배웠다. 당시 록히드마틴과의 공동 탐색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이 밀알이 되어 1997년부터 개발이 시작됐고 9년 만에 성공했다.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양산에 이른 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거나 추락해 항공기 체계 사업이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T-50 고등훈련기를 플랫폼으로 TA-50 전술입문훈련기, T-50B 블랙이글, FA-50 경공격기가 차례로 양산돼 우리 영공을 지키고 있다.”

이봉근 한국항공우주 수출혁신센터장은 국산 초음속 항공기인 FA-50이 동급 경쟁기에 비해 월등히 기동성이 뛰어나다며 K방산의 높은 위상을 강조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당시 록히드마틴은 우리의 자체 개발·양산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던데….

“한국인의 도전 정신과 창의 DNA가 맞물려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02년 8월 첫 시험 비행 이후 3년 반 동안 1411회의 시험 비행을 했다. 속도 고도 하중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성능과 안전성을 점검하는데 매일 문제가 발견되고 매일 고치는 일이 반복됐다. 설계 도면에서 보이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 고치는 건 순전히 엔지니어의 역량인데, 한국 엔지니어들 정말 뛰어나다. 예를 들어, 우리 항공기가 어느 속도를 넘어서면 조종사가 느낄 정도로 진동과 소음이 심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원인을 찾아보니 주착륙 바퀴가 접히고 덮개가 닫히면 안과 밖 기압 차가 커져서 덮개가 떨리는 거다. 덮개에 바늘구멍을 내는 디자인으로 기압 차를 줄여 이를 해결했다.”

―감사원 감사를 받는 등 개발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원래 T-50 개발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이 항공전자, 비행제어, 주익(主翼·중심날개) 3개 분야에 파트너로 참여했다. 그런데 양산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이 주익의 납품단가를 대당 360만 달러로 올려 요구했다. 이를 우리가 자체 생산할 경우 반값으로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1억1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생산권리를 사 왔는데 여기에 세금이 지원됐다고 감사를 받는 등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나중에 검찰은 오히려 국가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인정해 무혐의 처분했다. 만약 그때 이 기술을 사지 않았다면 폴란드 수출 물량의 단가까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항공우주산업 후발국인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할 수 있었나.

“항공기는 기계 전자 소재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융복합 기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부터 IT 산업까지 선도하면서 그동안 축적된 기술력이 FA-50을 탄생시켰다고 봐야 한다. 안보와 직결되는 항공우주산업은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FA-50의 국산화율은 현재 65%까지 올라왔다. 여러 나라가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도전했지만 실질적으로 개발에 성공하고 수출까지 한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오래전부터 FA-50의 폴란드 수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되곤 했다. 2010년 T-50 고등훈련기 구매를 검토하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그 내각을 태운 전용기가 ‘카틴숲 학살’ 70돌 추모식 참석차 이동하던 중 추락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카틴숲 학살’은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 비밀경찰이 포로가 된 폴란드군 장교와 지식인을 집단학살한 사건이다. 2013년 폴란드 정부가 사업을 재개했지만 FA-50은 이탈리아의 M346에 패하고 말았다.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확전 가능성을 우려한 폴란드는 다시 FA-50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보통 수년이 걸리는 무기 도입 계약이 반년 만에 이뤄졌다.

“올해 2월 폴란드 국방부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해 F-50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고,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한국-폴란드 양자회담이 성사되며 급진전됐다. 폴란드에 진출한 기업들이 쌓아 둔 신뢰도 큰 역할을 했다. 16일 FA-50 본계약 서명식에 참석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기업이 폴란드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서로를 존경하고 있다’고 했다. ‘카틴숲의 학살’이 보여주듯 폴란드와 한국은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역사를 공유한다. 한국의 첨단 무기 도입으로 자주 국방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폴란드는 왜 FA-50을 선택했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폴란드가 느끼는 위기의 정도는 여느 나라와는 다르다. 언제 전쟁이 닥칠지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FA-50 경공격기를 선택한 것이다. 한국은 안보환경의 특수성상 무기 체계가 실전에서 검증됐다. 생산이 중단될 일도 없다. 폴란드가 원하는 신속한 공급과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약속할 수 있었다. 초음속 항공기인 FA-50은 동급 경쟁기에 비해 월등히 기동성이 뛰어나다. 공대공(空對空)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기동성이다. 또한 2028년까지 폴란드는 소련제 전투기를 퇴역시키고 미국의 초음속 전투기인 F-15, F-16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와 호환성이 높은 것도 장점이다. FA-50 조종사들은 짧은 훈련만으로도 F-15, F-16에 적응할 수 있어 바로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

―한국 무기에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가성비가 좋다고들 하는데 이 말은 제품이 우수한데 운용비용이 낮다는 뜻이다. FA-50을 예로 들면, 항공기 체계에서 초기 개발비용이 30%라면, 30∼40년 운용되는 동안 70%의 비용이 든다. 무기를 사 왔는데 운용비용이 많이 들면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된다. 한국 무기는 보통 동급 경쟁기 유지비의 절반 수준이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안보 상황상 한국은 운용비용을 낮추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지속적으로 성능 개량에 대한 투자도 이뤄진다. 무기 체계도 전장 환경이 바뀜에 따라,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술 발전에 따라 꾸준히 진화해야지 전력이 유지된다.”

올해는 K방산이 새 역사를 쓴 해다. 폴란드와의 대규모 계약 외에도 한화디펜스가 이집트에 K9 자주포를, LIG넥스원이 아랍에미리트에 천궁-Ⅱ 지대공 요격무기를 수출했다. 한국 무기 수출 규모가 올해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K방산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중학생이었던 1977년, 한국 경제 전체 수출 규모가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K방산만 100억 달러라니 상전벽해다. 한국의 경제 성장, 축적된 기술, 한류의 영향력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K방산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본다. 다만 민수산업과 군수산업은 차이가 난다. 수요가 지속적이기도 어렵고 인류 역사에서 바람직한 현상도 아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K방산의 매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수출산업이라는 인식에서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항공기는 내수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들다. 군이 무기 성능 요구도를 설정하는 단계부터 해외 수출을 감안해야 향후 개발비용이 낮아진다. 수출된 방산 품목이 다양해지고 있어 조종사·정비사 교육 훈련, 부속품 지원 등 운용을 돕는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이봉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출혁신센터장1987년 삼성항공산업에 입사했다. 1999년부터 국내 항공기업 3곳이 통합된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비행운영팀장, 수출지원실장, 미주법인장 등을 지냈다. T-50 엔지니어에서 마케터로 변신해 FA-50 수출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