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이정향 영화감독
1986년. 이란의 시골 마을에 사는 여덟 살 소년 아마드는 숙제를 하려다 가방 속에서 두 권의 공책을 발견한다. 실수로 짝꿍의 것까지 가져왔다. 숙제는 반드시 공책에다 할 것, 안 그러면 퇴학을 시키겠다는 선생님의 경고가 떠올라 아마드는 짝꿍의 공책을 돌려주러 길을 나선다. 짝꿍이 사는 마을 이름만 알지 주소는 모른다. 하지만 멀고도 낯선 곳이라 사람 이름 하나만 가지고 집을 찾는 건 어렵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짝꿍인 네마자데의 집을 물으며 숨차게 뛰어다니지만 수확이 없다. 그 동네에는 네마자데라는 이름이 흔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이미 날은 저물었다.
나도 저 나이 때에는 저랬다. 집에 유선 전화기는 있었지만 여덟 살짜리가 용건을 전화로 처리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내 실수 때문에 친구가 퇴학당할까 봐 초조해져서 무작정 뛰쳐나갔을 거다. 결국 종일 고생만 하고 성과 없이 돌아왔대도 그런 시간들로 인해 우리는 한 뼘씩 자란다. 온 가족이 전화기를 공유했던 시절이라 교우관계도 공유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덕에 조언 같은 참견을 견디며 눈이 뜨이고, 위로도 받았다. 컴퓨터는커녕 집 안에 텔레비전도 한 대뿐이라 채널의 선택권이 내게 오는 건 불가능했다. 주말에 방영하는 영화는 밤 10시에 시작이라 부모님의 눈치를 심히 봐야 했다. 며칠 전부터 온갖 아부와 심부름으로 방영권을 따놨는데 하필 그 시간에 정전이 됐다. 깜깜한 동네를 보며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놓친 방송은 언제 다시 해줄는지 알 도리가 없고,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주어진 상황에 나를 맞춰야 했기에 절실함으로 매 순간이 애틋하고 소중했다.
아마드는 짝꿍의 집을 안다는 노인을 만난다. 숨이 차 느릿느릿 걷는 노인의 걸음 속도에 맞춰 네마자데의 집에 당도하지만 그곳은 이미 아마드가 들렀던 동명이인의 집이다. 아마드는 공책을 돌려준 것처럼 옷 속에 감추고 자신을 기다리는 노인에게 돌아온다. 허탕을 친 게 화나지만 그보다는 노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서서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