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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는 그 자체로 예술… 보존 어려운 종이작품 100년 이상 유지시켜”

입력 | 2022-09-28 03:00:00

김미나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과정 담은 ‘표구의 사회사’ 펴내




그림 뒷면에 천이나 여러 겹의 종이를 발라 꾸미는 표구(表具)는 일제강점기 이래 예술의 바깥 테두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표구는 ‘장황(裝潢)’ ‘배접(褙接)’이라 불리며, 이 또한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작업으로 대접받았다.

2006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류(紙類) 작품을 복원해온 김미나 학예연구사(39·왼쪽 사진)도 표구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 ‘표구의 사회사’(연립서가·오른쪽 사진)를 펴낸 그는 “눈에 보이는 테두리는 표구의 일부일 뿐”이라며 “보존에 취약한 지류 작품을 100년 이상 버티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표구의 진정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2006년 차병갑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고문(69)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으며 표구에 빠져들었다. 차 고문은 1997년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복원한 지류문화재 복원전문가다. 김 학예연구사는 “스승님은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전통 배접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며 “충무공 영정 복원 때도 일본 비단으로 덧댄 표구를 전부 제거하고 우리 전통 비단으로 단장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값이 비싸고 구하기 어렵더라도 우리나라 비단을 고수하셨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여러 겹의 종이를 덧대는 전통을 지키셨고요. 당장은 효율이 떨어져 보여도 전통 원칙을 지켜야 작품을 100년 넘게 보존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가 표구를 책으로 정리한 것도 스승에게 배운 가르침을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족자와 병풍, 액자 등의 표구 제작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김 학예연구사는 “요즘은 표구의 보존성보다 비용과 디자인을 중시해 베니어합판에 덧대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겉보기에는 값싸고 편리하지만 종이가 변색돼 보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여러 겹의 종이를 작품에 덧대는 전통 방식은 한두 단계를 거르면 당장은 티가 나지 않아도 언젠가 작품에 탈이 나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에서 바라보는 외형이 아니라 단단한 내면에서 나온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