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읇다]〈45〉아직 끝나지 않은 삶
영화 ‘마다다요’에서 우치다 선생은 회갑 후 생일 축하 모임에서 제자들이 장난스레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냐고 묻자 술잔을 단번에 비운 뒤 “아직은 아냐”라고 답한다. 동아일보DB
조선 후기 문신 이시원(1790∼1866)은 회갑 날 10촌형 이휘원에게 시 한 수를 받았다.
시를 받은 이시원은 만감이 교차해 밤새 친지들이 권하는 술잔을 받아 마시다 몹시 취했다.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스스로를 애도하는 13수의 시를 읊었다.(‘回甲日, ……, 盖取古人自挽之意, ……’)
이시원이 회갑 날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지난 삶을 돌이켜봤다면, 우치다 선생은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냐고 장난스레 외치는 제자들 앞에서 술잔을 단번에 비운 뒤 “마다다요(아직은 아냐)”라고 답한다. 영화는 한시와 달리 시종 유쾌하지만,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닥쳐올 죽음을 비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제 의식은 비슷하다.
우치다 선생은 자신의 생일잔치에 온 제자의 어린 자식들에게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찾고, 그 소중한 걸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이시원도 회갑 날 밤 쓴 시에서 자식과 조카들에게 흘린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권면했다(제11수).
우치다 선생은 77세 생일날에도 단번에 큰 잔의 술을 들이켜곤 “아직은 아냐”를 외친다. 만취해 돌아와 잠든 선생은 꿈속에서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아직이야?”라고 묻는 동무들에게 선생은 “아직은 아냐”라고 답하며 숨을 곳을 찾다 문득 노을 지는 하늘 저편을 바라다본다.
장수가 드물지 않은 시대가 됐다. 오래 살았다고 어찌 남겨진 시간이 아쉽지 않을까. 경험하지 않으면 짐작하기도 어려운 노년의 심정에 대해, 한시에선 처연한 눈물을 흘리지 말라 하고 영화에선 아직은 아니라고 외친다.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