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교육청 올 적립금 15조 전망 작년까지 쌓인 5조 합하면 20조로 초중고 학령인구 줄어 쓸 곳 없어 “대학에도 교부금 지원해야” 목소리
초중고교 지원에 편중된 국내 교육재정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돼 재정이 말라가는 대학들은 실습 예산마저 삭감하는 반면 각 시도교육청은 예산이 넘쳐 사용처를 찾지 못하고 적립한 기금만 올해 말 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초중고에만 쓸 수 있도록 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빨리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보가 28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과 함께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적립금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 한 해 적립될 시도교육청 기금 규모가 총 15조1417억 원(추경안 기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시도교육청 기금은 쓰지 않고 쌓아 두는 ‘저축’에 해당된다. 2018년만 해도 4338억 원에 불과하던 17개 시도교육청 기금 누적액은 2019년 1조7157억 원, 2020년 2조8948억 원, 지난해 5조4224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올해 여기에 15조 원이 더해지며 기금 누적액이 20조 원을 넘어 1년 만에 4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학령인구가 급감해 초중고에 써야 하는 돈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시도교육청이 ‘퍼주기’식 사업을 늘리다 시도의회 등의 견제를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결국 예산은 급증하는데 쓸 곳이 없어 쌓아두기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취약계층 및 청년 일자리 지원을 위해 예산을 쥐어짜는 상황에서 교육 부문만 유독 예산이 불합리하게 배분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해 시도교육청 교부금 중 일부인 3조6000억 원을 대학과 평생교육 예산에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방안 역시 시도교육청이 반대하고 있다. 정 의원은 “초중등 교육과 고등 교육 간 최소한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고등교육 특별회계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트북 29만대 사줘도 1조 남는 교부금… “제도 바꿔 대학 배분을”
교육재정 불균형 개선
예산 느는데 학생 줄어 쓸곳 없어
서울 3년간 중1에 무상 태블릿… 경기교육청 기금 1년새 17배로
올해 대학 지원 예산은 12조 불과… 등록금 14년째 묶여 운영난 극심
올해 말 시도교육청이 쌓아 둔 기금이 1년 만에 15조 원 늘어 총 20조 원에 육박하는 것은 초중고에 배부되는 교부금이 이제는 선심성 예산을 써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방증이다. 반면 올해 정부가 대학을 지원한 고등교육 관련 예산은 11조9000억 원. 시도교육청에 올해까지 적립될 기금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 돈 쓸 곳 없어 기금 쌓는 교육청
28일 기준 경기와 대구, 충남을 제외한 14개 시도교육청은 각 광역의회 예산 심사가 끝나 기금 규모가 확정됐다. 각 시도교육청의 올해 말 기금 적립 예상액은 지난해 말 대비 최대 16.9배(경기)에서 최소 1.6배(경북)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에게 노트북 29만 대를 보급한 경남도교육청은 올해만 1조715억 원을 기금으로 쌓는다. 여러 사업을 해도 그만큼 교부금이 남는다는 뜻이다.경기도교육청은 올해 2조9644억 원을 기금으로 적립할 계획이다. 각 시도교육청 중 가장 많다. 그대로 경기도의회를 통과한다면 전체 기금이 3조1504억 원에 이른다.
이처럼 각 시도교육청이 경쟁적으로 기금 적립에 나서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받는 예산은 급증했는데 학생이 줄어 쓸 곳이 마땅찮다. 이런저런 사업을 도입해도 ‘낭비성 예산’이라며 질타받기 일쑤다. 울산시교육청은 올해 학생교육원 제주분원 매입 예산 191억 원이 시의회에서 삭감됐다. 강원도교육청은 중학교더배움학습공간 개선비 20억 원과 스터디카페형 학습실 조성비 10억 원 등이 삭감됐다.
○ 사용처 중복되는 기금도 많아
기금 적립 규모뿐만 아니라 기금 수도 우후죽순 늘고 있다. 시도교육청의 기금 수는 2017년 9개에서 올해 53개까지 증가했다. 가장 많은 기금을 운용하는 곳은 서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신청사 및 연수원 건립기금 △남북교류협력기금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 △생태전환교육기금 △통합교육재정안정화기금 △학교안전공제 및 사고예방기금 등 6개의 기금을 운용한다. 이 중 생태전환교육기금과 통합교육재정안정화기금은 올해 신설됐다.53개에 달하는 기금 중에는 운용 목표가 기존 사업과 겹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신설해 10억 원을 적립하는 생태전환교육기금은 농촌 유학과 현장 체험학습을 늘리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미 생태전환교육 내실화 예산 21억9000억 원을 본예산으로 책정했다.
17개 시도교육청 중 8곳이 운영 중인 남북교육교류협력기금은 적립을 계속하고 있지만 ‘개점휴업’ 상태다. 2019년 경기도교육청이 가장 먼저 설치했지만 냉랭한 남북관계 때문에 실제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교부금 제도 개선해 투자 배분 필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내국세 연동 방식으로 급증하는 동안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은 2018년 9조6000억 원, 2020년 10조9000억 원, 올해 11조9000억 원 등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여기에 2009년 이후 14년째 국내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학 스스로 투자를 늘리고 우수 교원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한 지방대 총장은 “입학한 아이들이 대학 실습실을 보고서 ‘고등학교 때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대학의 경쟁력 약화가 교육 재정의 불균형한 집행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명예교수는 “등록금을 묶어 놓고 강의당 학생 수는 줄이라고 하니 실험·실습비, 도서 구입비 같은 지원 경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중고교에만 쓸 수 있는 교부금의 ‘장벽’을 허물어 시도교육청이 기금을 쌓는 대신 고등교육에 투자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나라의 다른 곳은 곳간이 비는데 초중등 교육만 돈을 적립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현재의 교부금 체제를 학령인구 감소 등을 반영해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