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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카페로 가자”[공간의 재발견/정성갑]

입력 | 2022-09-30 03:00:00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지난 추석 연휴, 차에 장모님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했다. 명절에 처갓집에 내려가면 군소리 말고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 설도 아내랑 같이 맞을 수 있다. 처갓집은 충남 공주. 동학사, 갑사, 신원사, 마곡사 등 명사찰이 많아 드라이브 코스도 그만큼 다양하다. 오랜만에 갑사를 목적지로 하고 아내가 운전을 했는데 도중에 사찰 대신 카페를 가는 것으로 행선지가 바뀌었다. “그냥 절에 가자”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심호흡을 하고 “그럴까? 그러자!” 했다. 검색을 하려는 나를 보고 그녀가 다시 주문했다. “오래된 카페로 가자.” 오호∼, 어디를 갈라치면 습관처럼 ‘새로 생긴 좋은 곳 없나?’ 하고 고민했던 탓에 신선하고 재미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계룡면에 있는 ○○○○○라는 카페였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지나 다다른 카페는 마음이 탁 트일 만큼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언뜻 봐도 수백 평이 될 정도로 큰 잔디밭이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 작은 연못과 야외 덱이 있었다. 꽃과 나무는 사방에 지천이었다. 도시인에게는 봄의 그것만큼이나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 대궐이었다. 그래도 꽃 이름을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가짓수가 워낙 많아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검색 엔진을 돌려 볼까 하다가 그게 또 무슨 소용인가 싶어 눈으로만 감상했다.

카페 내부도 넓고 말끔했다. 오래된 전축과 나무 테이블, 그 위에 깨끗하게 올린 자수 천과 차 도구들. 인심도 좋아 각자 음료 하나씩을 시켰는데 다식(茶食)이 작은 접시로 다섯 개나 나왔다. 감탄사가 나오고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졌다. 본인 나이 42세 되던 해에 이곳으로 내려왔으니 벌써 26년이 됐다는 이야기, 논을 메워 집을 짓고 땅에 잔디를 심었는데 잔디밭에 물을 살살 뿌리고 불을 지피면 불도 안 나고 잡초도 제거할 수 있다는 이야기, 지금은 그래도 꽃이 좀 있는데 11월에 된서리가 내리면 12월에 모든 꽃이 ‘딱’ 끝난다는 이야기. 전원생활에 도움이 될 내용도 많았다. “음식물 찌꺼기를 땅에 파묻을 때는 위에다가 음식물 발효제를 뿌리면 좋아요(그런 것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러면 발효가 활발해져 더 빨리 분해가 돼요. 땅에 파묻는 대신 호박 구덩이에 넣어도 좋아요. 그러면 호박이 안 떨어진다는 소리도 있어요.” 안에 있는 애완견 미미도 밖으로 나오고, 주인 찾아가는 미미가 얄밉다고 새장 속 새들은 짹짹 울어 대고. 눈이 즐거운 건 기본이고 마음과 시선의 깊이, 삶의 기술도 살짝 올라가는 듯한 시간이었다. 다음에 나도 제안해야지. “우리, 오래된 카페로 가자.”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