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곤 한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로 유창하게 해야 한국 생활에 지장이 없느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신은 어떤 위치에서 뭘 어떻게 하면서 생활하고 싶은지’를 역으로 물어본다.
필자는 2009년도에 한국에 처음 왔을 적에 공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점수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시험의 등급은 1급부터 6급까지 있는데 당시 5급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고급 수준으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수준이다. 한국에 있는 대학교 및 석·박사 과정에 지원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최소 한국어능력시험 3급 이상이니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꽤 있었다.
지금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친구들과는 달리 필자는 한국어를 이미 ‘아는’ 사람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언어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할 줄 안다고 믿었던 한국어가, 전공 수업을 듣는 첫날에 ‘외계어’처럼 들렸다. 그 외계어를 해석하고 친근해질 때까지 걸린 시간이 2년 정도다. 그 기간 동안 열심히 단어 공부를 한 끝에 전공 수업을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간단한 예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돈을 내다’라는 말의 경우 상황과 쓰임새에 따라 ‘결제하다, 계산하다, 납입하다, 납부하다’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많은 단어의 뜻은 모두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는 의미다. 또 다른 예는 ‘가까운 곳’이다. 해당 단어와 가장 가까운 단어는 ‘근방, 주변, 동네, 인근’ 등이다. 원어민이 아닌 경우 그 단어의 쓰임새를 제대로 알아야 표현의 부자연스러움을 피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을 정도의 표현도 여럿인데 그 가운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가 있다. 이 말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은 ‘아니다’라는 부정형을 보고 이 표현은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잘못 추측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도 우리나라 말이 어렵다고 생각될 때가 언제인지 의견을 나눠줬으면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배울 만해요?’라고 물었을 경우 그들의 대답을 통해 현재 어떤 수준의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한국어는 배우기 쉬운 언어 같다’라고 답할 경우 한국어를 배운 지 정말 오래되지 않은 학습자일 것이다. 중급 수준으로 올라가면 슬슬 ‘한국어가 어렵지만 재미있는 언어’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국어능력시험 6급 취득 수준 이상으로 한국어를 아는 사람들의 경우 ‘한국어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언어’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마지막 분류의 사람에게 한국어는 ‘썸’이라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아리송한 언어다.
그렇다면 한국어 초급 학습자들은 왜 이토록 어려운 한국어를 쉽다고들 할까. 가장 큰 원인은 케이팝과 K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이 작품들을 통해 한국어에 대한 친근감을 쌓았을 것이다. 그 안에 등장하는 ‘오빠, 사랑해, 좋아, 예쁘다, 싫어, 안녕’ 등의 단어가 매우 친숙해져 한국어를 잘 안다는 착각이 들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회적 위치와 환경이 바뀔 때마다 느끼게 된 것은 ‘나는 한국말을 할 줄 안다’라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도 한국어를 익히고 있는 학습자에 불과하다. 한국어는 정말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어려운 언어이다.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