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지금은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인정받는 분위기이지만, 여전히 문신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신은 한국에서도 약 2000년 전 삼한 사람들이 했다는 기록이 중국 역사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문신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문신의 색소는 숯검정
문신을 한 얼굴을 표현한 1만 년 전 사카치알리안의 암각화. 강인욱 교수 제공
문신의 기원은 바로 인간이 입는 상처에서 기원했다. 인간의 살갗은 다양한 상처를 치유하면서 흔적을 남긴다. 상처가 깊게 나면 사람들은 다양한 약초를 문지르거나 살균 성분이 있는 숯검정을 문지른다. 이러한 치료의 과정에서 그 색소가 침잠하여 흔적이 남아 있게 되는 것에서 문신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연히 시작되었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문신에 쓰는 색소는 숯검정이었다. 문신의 또 다른 특징은 한번 새기면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는 것이니, 사람들은 개인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자기가 속한 부족, 신분을 표현했다. 알프스 빙하에서 발견된 5000년 전의 미라인 ‘외치(¨Otzi)인’도 자신만의 독특한 문신을 남겼는데, 그의 몸 곳곳은 마치 지금의 바코드를 연상시키는 기호들로 덮여 있었다. 신분증이나 제복이 등장하기 전부터 문신은 각자의 인격을 대표한 증표인 셈이었다.
신분 높아질수록 커지는 문신
키르기스스탄 샴시에서 출토된 서기 5, 6세기 무렵의 황금 마스크. 여성 사제가 썼던 것으로, 신라 금관에서 보이는 것과 비슷한 나무 무늬가 새겨져 있다. 마스크 주인은 생전 비슷한 무늬의 문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인욱 교수 제공
문신은 유목 전사들에게는 계급장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 알타이지역에서 2500년 전에 살았던 유목 전사들이 남긴 파지리크 문화의 고분들에서 다양한 전사들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미라가 된 전사의 어깨와 허벅지에 하늘을 나는 사슴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고분이 클수록 문신도 더 많았다. 공을 세우고 계급이 올라갈 때마다 문신은 늘어났으니, 일반 전사는 어깨에만 했지만, 최고위 왕족의 경우 상반신은 물론이고 하반신 곳곳에도 빽빽이 문신을 했다. 제대로 된 글자를 남기지 않았던 유목민들은 자신들의 부족과 계급을 상징하는 특정한 기호로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살갗에 표시한 것이다.
몽골 초원 일대에서 발견된 2∼3m 높이의 거석 기념물. 전사자를 기리는 의미로 사슴을 빼곡히 새겨 ‘사슴돌’이라 불린다. 강인욱 교수 제공
침술처럼 치료 역할했을 가능성
문신의 과정은 침술과도 비슷하여 치료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파지리크 미라의 허리 밑부분에는 양쪽으로 마치 침을 놓은 듯 일렬로 점을 찍은 문신이 남아 있다. 공교롭게 말을 타고 다니면 가장 통증이 심한 요추 부분이다. 기마인들에게 요통은 피할 수 없는 고질병이었으니, 반사요법으로 허리 통증도 줄이고 신령한 힘을 몸에 불어넣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문신은 바늘로 수백 번, 수천 번을 찔러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고통을 동반하여 우리 몸을 도화지 삼아 만들어진 문신이야말로 고대의 정신문화가 담긴 USB메모리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문신은 근대 이후에는 어두운 이미지로 점철되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몸의 털을 밀고 표지를 하는 대신에 신분과 계급에 맞는 옷과 화장으로 자신의 몸을 가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문신은 근대화하지 못한 야만의 상징이 되었고, 이질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이 증명한 문신은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의 지위와 아름다움을 표현한 가장 원초적이며 인간적인 화장술이다. 자신의 몸을 바늘로 찔러 가면서 얻어낸 나만의 시그니처에 대한 갈망은 바로 인간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문신 언어’
종이책의 소멸과 무한한 데이터의 소통으로 사람들은 텍스트 대신에 이미지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한 의미의 전달은 인간이 지난 수만 년간 문신을 통하여 소통을 한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디지털과 달리 사람의 문신은 복제가 되지 않고 지우기도 어려우니, 바로 자신만의 NFT를 몸에 만드는 셈이다. 흔히 정겹다는 표현을 ‘살갑다’고 한다. 사람의 피부는 단순히 외부의 자극을 방어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고, 사회와 소통하는 매체라는 뜻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람 사이의 비대면이 급격히 많아진다. 그렇다고 해도 수십만 년간 자신이 가진 오감으로 느끼고 표현해온 인간의 몸과 마음은 바뀐 것이 없다. 아무리 가상현실의 세계가 발달되어도 몸으로 기억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문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인간들 사이에 실제 몸을 맞대고 이야기를 할 일이 거의 사라지는 21세기에 문신이 더욱 유행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디지털 시대의 반작용이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