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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어쩌다 주저앉았나[이미지의 환경수다]

입력 | 2022-10-02 08:00:00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종이컵과 일회용 플라스틱컵. 동아일보DB

몇 달 전 사무실 내 책상에는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브랜드컵 4개가 쌓여있었다. 해당 매장으로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다회용컵이었다. “가야지”, “가야 하는데…” 하고 몇 달을 벼르다가 결국 반납하지 못하고 사무실이 바뀌었다. 일회용컵을 쓰고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라는 제도가 생각보다 안착이 쉽지 않겠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다.

컵을 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소비자도 이럴 진데 컵마다 반납 라벨을 붙이고, 반납한 컵을 보관하고, 보증금 관련해 온갖 잡다한 업무와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매장 측은 얼마나 막막할까.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불편과 희생을 강제해야 하는 생각 이상으로 강한 규제였다.  

2020년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포함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자원재활용법)’이 후루룩~ 통과될 때만 해도 아마 대부분 이런 것들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제도가 폭삭 주저앉게 되리라는 것도. 

지난달 23일 환경부는 12월 2일로 예정됐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세종과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6월 시행에서 12월로 유예된 데 이어 이번엔 시행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거침없었던 법 통과, 제도 공표
2018년 일회용품 문제가 불거지고 각종 재활용 대책들이 처음 제시됐을 때 환경부 출입기자를 맡고 있었다. 그 해 중국이 ‘전 세계의 쓰레기장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며 갑자기 재활용쓰레기 수입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일부 분리수거업체들이 비닐, 플라스틱 수거를 거부하는 이른바 ‘중국발 쓰레기 대란’이 터졌다. 당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은 난지도를 방불케 했다. 며칠간 수거해가지 않은 재활용품들이 산처럼 쌓였다. 우리 집 분리수거 통도 며칠 일회용품을 못 버렸더니 폭발할 듯 넘쳐났다. ‘우리가 일회용품을 이렇게 많이 썼었나?’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기자의 집에 있는 재활용품 분리수거함.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네 개의 분리수거함이 꽉 차고는 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쓰레기 사태는 어찌 저찌 정리가 됐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쓰레기산’의 잔상은 오래 남았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도 ‘플라스틱OUT’이 이슈였다.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가 대책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8년 “실효성 없다”며 쓸쓸히 사라졌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10년 만에 다시 무대 전면으로 등장하게 됐다.   

커피전문점 등 외식업계에서 한해 사용되는 일회용컵은 수십억 개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중 매장으로 반납되는 비율은 5%도 안 되고 대부분 생활폐기물에 섞여 매립ㆍ소각된다. 

이런 상황이라는데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시행 검토 이야기를 듣고 아무 거리낌 없이 ‘그래, 시행하는 게 맞지!’ 하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제도의 필요성에 동의했을 것이다. 

관련법안 통과까지 거침이 없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포함해 빨대, 비닐 등 각종 일회용품 감축 규제를 담은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은 2020년 6월 여야 특별한 이견이 없는 가운데 통과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감염 위험을 이유로 매장 내 사용이 금지됐던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은 재개(2020년 2월)됐지만, 재활용법 통과에 문제는 없었다. 누가 생각해도 ‘옳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라 공표 1년 뒤인 2021년 6월 보증금을 관리하는 별도 센터를 개소하고, 2년 뒤인 2022년 6월에는 보증금제를 전격 시행하기로 했다. 제도의 취지는 옳고, 반대는 없고, 시간은 넉넉해보였다. 
“시행 넉 달 전, 제도 처음 들었다”
잡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제도가 공표된 지 1년 8개월이 흐르고, 제도 본격 시행을 불과 4개월 앞둔 올 초부터였다. 

“2020년 법이 통과될 때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가 협의회 지도부에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제도 시행을 넉 달 앞둔 올 2월에 처음 이런 제도가 시행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의 가맹점주들이 모인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의 말이다. 어떤 제도를 신설하려 하면 그 전후로 제도 대상자나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제도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미 관련법은 통과됐고 보증금제 시행을 불과 몇 달 앞뒀는데 제도의 최전선에 서야 할 가맹점주들이 내용을 알지 못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알고 보니 정부가 법 통과 전후 만난 업계 관계자들이란 모두 프랜차이즈 본사 측 사람들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여러 차례 간담회나 논의 자리가 있었다. 프랜차이즈 본사 사람들과 했고, 제도 시행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도 본사 측과 진행했다”고 전했다. “가맹점주들은 생업에 바빠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웠고 이전에도 재활용품 대책 시행 시 본사와 논의해왔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면 본사라도 일회용컵 보증금제 내용과 시행시기에 대해 가맹점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았다. “듣자 하니 프랜차이즈 본사라고 돼있는 곳 직원들이 네댓 명에 불과해 사실상 본사의 실체가 없는 업체도 있었다더라.” 한 업종 관계자가 전했다. 

일회용컵에 부착된 반납 라벨. 저 라벨을 스캔하면 보증금 반납 대상 일회용컵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DB

더구나 뒤늦게 알게 된 각종 세부 시행안에도 문제가 많았다. 반납되는 컵이 보증금 대상 컵인지 확인하기 위해 붙이는 ‘반납 라벨’의 경우 개당 6.99원으로 점주가 ‘내돈 내산 내붙(내 돈으로 내가 사서 내가 붙인다)’ 해야 했다. 회수한 컵을 회수업체로 보내는 비용도 점주 부담이었다. 회수하기 쉽게 규격과 색상을 제한한 표준컵은 개당 4원, 비표준컵은 개당 10원이었다. 음료값+보증금을 카드로 계산할 경우 보증금에도 카드 수수료가 붙는데 그 또한 점주가 부담해야 했다. 즉 커피를 팔면 팔수록 기존보다 10여 원씩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였다. 

협의회 관계자들은 정치권을 돌며 자신들의 사정을 알렸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 등이 제도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고, 결국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둔 5월 말 갑작스럽게 시행 유예가 결정됐다. 관련법이 공표된 지 2년, 정부가 제도 도입을 고려한 때부터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벼르고 벼른 제도가 고작 며칠 만에 주저앉는 순간이었다.
유예했지만…빠듯한 6개월
안타깝긴 했지만 제도 준비가 여러 면에서 부실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제도는 기본적으로 ‘오염자부담원칙’에 근거했다. 일회용컵 쓰레기를 발생시킨 자가 그로 인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그렇기에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으로 발생하는 비용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존 제도에 따르면 여러 손해를 떠안게 되는 가맹점주들이 과연 ‘오염을 주도한 사람들’인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제도를 유예한 덕에 여러 분야의 의견을 수렴해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면 의미가 있었다. 

업계는 1년 혹은 무기한 유예하면서 충분히 논의한 뒤 제도를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환경부는 연내 시행을 못 박았다. 제도가 한없이 유예하다 무산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 끝에 환경부 주장대로 올해 12월 1일까지 제도를 유예하고 2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하지만 6개월은 생각보다 짧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종, 업체 규모, 직영점인가 여부, 본사와의 관계 등에 따라 업체별 입장과 사정이 천차만별이었다. 의견을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존에 제기됐던 문제들뿐 아니라 새로운 문제와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점주협의회 관계자는 “편의점, 무인카페도 일회용컵을 이용해 음료를 판매하는데 이들은 시행대상에서 빠졌다. 시행령을 개정해 편의점, 무인카페 등도 대상으로 넣어달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증금제가 아니라 생분해 플라스틱컵 도입을 고려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관련법이 통과되기 전 있어야 했던 논의들이 이제야 뒤늦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세부안이 확정되지 못한 채 9월을 넘겼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환경부였다. 문제가 됐던 반납 라벨, 컵(표준용기) 처리 비용, 카드 수수료 등을 모두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서로 다른 카페 간에 반납을 의미하는 ‘교차 반납’도 우선은 허용하지 않고, 까다로웠던 무인 컵 회수기 기준도 낮췄다. 

“그런데 (9월) 21일인가, 환경부에서 회의에 나와 그러더라고요. ‘일부 지역만 먼저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요. 그것에 대해 논의한 적은 없었어요. 일방적인 통보였습니다.” 정책 결정을 위한 협의체에 참석해온 한 인사의 말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월 23일 정부는 ‘12월 2일 시행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세종과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희망의 불씨…점주들 “확대 계획 내놔라”
왜 정부는 3개월간 치열한 추가 논의를 거치고 업계 측 의견까지 대거 수용한 뒤 갑자기 시행규모를 축소하기로 한 걸까. 

한 재활용 업계 관계자는 “이슈가 된 반납 라벨이나 수수료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남은 과제가 많았다”며 “아마 논의를 거듭할수록 정부 스스로 ‘준비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전국 시행을 강행했다면 어딘가에서 크게 탈이 날 것이라는 걸 정부도 깨닫지 않았나 싶다”고 해석했다.  

환경부가 지난달 23일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세종과 제주에 한정해 우선 시행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실제 매장에서 컵 판매와 반납이 혼재하며 벌어질 혼란, 회수한 컵의 보관과 관리, 무인회수기 개발, 플라스틱컵 재활용업체 선정 등 시행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여러 문제가 산적해있는 상태다.

정부는 시행 규모 축소를 발표하며 향후 언제 어떻게 확대해가겠다는 계획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실상 제도가 존폐기로에 섰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세종과 제주에서 우선 시행하고 향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는 건 사실상 제도가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는 뜻 아니겠느냐”하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이제 가맹점주들과 본사, 컵 수거업체 등이 제도 시행에 적극 공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맹점주협의회는 정부가 축소 시행을 발표한 나흘 뒤인 27일 ‘이번 논의에 참여한 협의회, 가맹본사, 시민단체들의 노력과 열망을 헛되이 만들었다’며 정부에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 계획을 제시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오히려 점주들이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시행 규모 축소 탓에 날벼락을 맞게 된 전국 수거ㆍ운반업체들 중 다수도 정부가 속히 전국 재개를 결정하길 바라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제도 시행에 맞춰 컵 보관 장소를 임대하고 수거 차량, 인력 등을 준비해놨던 탓에 임대료, 차량구입비 등을 손해 보게 됐다. 한 수거ㆍ운반업체 대표는 “일회용컵 수거를 하는 김에 카페 커피박을 받아와 재활용하거나 업사이클링(쓰레기를 재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구상하고 막 설비를 꾸리려던 참이었다”며 “전국 시행이 돼서 계획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재활용품 수거업체에 쌓여있는 쓰레기들. 동아일보DB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도 “우리라고 ‘일회용품 쓰레기 발생의 원흉’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겠나. 어찌 됐든 좋은 정책이고 몇 달 간 함께 머리를 맞댔으니 제도가 원만히 시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종, 제주 시행까지 두 달의 시간이 남았다. 뒤늦게 사회적 논의와 세부방안 개선이 이뤄진 이 제도가 이번에는 연착륙할 수 있을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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