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습 SW 개발 ‘이팝소프트’… 게임 개발자들이 창업 멤버로 참여 맞춤형 학습앱 ‘말해보카’ 개발… 영작문장 빈 단어 맞히기 방식 도입 사용자 수준 맞춘 용법-예문 제시… 기억 정착 위해 적절한 반복장치도 AI가 자기수준 보여줘 경쟁심 자극… 출시 3년새 다운로드 수 200만 넘어
박종흠 이팝소프트 각자대표이사(서 있는 사람)가 직원들과 함께 말해보카 앱의 리뉴얼 작업을 하면서 디자인과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인공지능(AI)의 시대에도 영어는 공들여 배워야 할 대상일까. 비즈니스를 해 본 사람이라면 사람이든 기계든 통역의 힘을 빌려서 협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리한 방식인지 알게 된다. 이팝소프트 박종흠 각자대표이사(45)는 이팝소프트 창업 전인 2008년 미국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이 만들었던 온라인 게임회사 ‘J2M소프트’가 미국 게임업체 일렉트로닉 아츠에 인수돼 몇 년간 영어를 주 언어로 삼아야 했다. 인수한 회사가 기술자이자 한국인인 박 대표를 배려해 뛰어난 통역 인력을 붙여줬지만, 온라인 회의 등에서 통역의 말을 듣고 자신이 말을 하면 통역이 다시 말하는 방식으로는 동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다. 사내에 돌아다닌 뒷말은 참담했다. “저 친구는 똑똑하다고 해서 회사가 인수를 했다고 하는데, 잘못 인수한 것 아닌가.” 이후 1년 반 동안 단어를 더 많이 외우고, 발음을 교정하고, 문장과 숙어를 익혀 동료들 앞에서 멋지게 발표를 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 영어 실력 업그레이드한 경험이 창업 밑바탕
단기간에 영어 실력을 높이려면 필요한 게 뭘까. 박 대표는 영어 학습을 최적화하고 싶었다. 일단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 단어부터 배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사용 빈도에 따른 단어 공부를 제시하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독일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기억 원리에 따라 반복해 주면 단어를 잊을 확률도 낮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 단어와 문장을 해석하는 공부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의사 표현을 위한 영어 문장을 만드는 데는 서툴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런 기능을 종합하면 사업이 되겠다 싶어 게임 회사 넥슨에 근무할 때부터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사업 아이템을 오랫동안 얘기하며 설득했다.영어학습 앱 ‘말해보카’의 사용 화면. 학습한 단어가 늘어나면 전국에서 상위 몇 % 수준인지를 보여주며 동기를 부여한다. 비슷한 단어 간 차이도 간략하지만 명확하게 설명하는 게 장점이다.
얼개는 단순하지만 디테일에 승부를 걸었다. 우리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은 영어 단어를 떠올려 기입을 해 보면 틀렸을 때 그 미묘한 차이를 간략하지만 핵심적인 문장으로 설명해 준다. 예컨대, ‘저희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점심시간에 와요’라는 문장을 영어로 표현한다고 할 때 ‘We get most of our ( ) during lunchtime’의 빈칸에 ‘guest’를 입력하면 말해보카 앱은 ‘guest는 초청을 받아서 온 사람을 뜻합니다.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을 뭐라고 부를까요?’와 같이 힌트를 겸해 ‘guest’와 ‘customer’의 차이점을 알려주는 식이다. 박 대표는 “‘take’ 같은 단어는 한국어로 연결되는 뜻이 40개가 넘는데, 말해보카 앱은 ‘가지고 가다’ ‘잡다’ ‘장악하다’ ‘구독하다’가 모두 ‘take’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고, 그중 사용자의 수준에 맞고,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용법 등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카트라이더 게임을 만들 때 경험 적용
박 대표를 비롯해 주요 창업 멤버들은 대부분 게임회사 넥슨의 동료들이다. 박 대표와 함께 각자대표를 맡고 있는 최영민 대표는 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카트라이더’ 게임을 만든 주인공이다. 게임을 만들 때 사용자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라면 기계와 경기를 할 경우 70 대 30 정도로 사용자가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경험칙 같은 것을 쌓았다. 너무 쉬워도 사용자는 게임을 그만두고 너무 어려워도 마찬가지라는 말의 구체적인 버전인 셈이다.AI를 이용해 학습자 개개인의 수준을 측정한 뒤 ‘약간 어렵지만 도전해볼 만한 문제’들만 집중적으로 제안해 학습자가 매일매일 앱을 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게임의 기본적인 특성은 경쟁이다. 말해보카 앱에서는 초기 문제를 풀고 나면 자신의 수준이 전국 상위 몇 %인지가 나온다. 매일 20개나 40개씩 영어 단어를 학습하다 보면 전국 단위 수준도 함께 올라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경쟁심을 자극한다. 박 대표는 “말해보카는 취미나 일 때문에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개발했지만 수능 영어 성적 상승과 같은 장기적인 목표가 있는 수험생에게도 적합하다”고 했다.
○“좋은 학습법은 잘 확산되지 않더라”
박 대표는 앱 개발 초기 학습 시장의 특성을 잘 몰라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앱을 잘 만들면 입소문이 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부모들이 좋은 학원이나 강사에 대한 정보는 주변과 공유하지 않는 것처럼 학습 시장에서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널리 퍼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박 대표는 앱을 개발한 뒤 학원을 통해 입소문을 내려고 했는데, 해당 학원에서 앱의 유용성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학원에서는 쓰지 못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이다. 이팝소프트는 온라인 마케팅을 활용해 영어 공부에 관심 있는 사용자들에게 직접 자신들의 앱을 알리는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다.
이팝소프트에서는 통역대학원 출신들이 일일이 문장을 다듬고, 미묘한 의미 차이에 대한 설명을 단다. 이런 노력을 인정 받아 2019년 말 앱 출시 이후 최근에는 다운로드 수가 200만 회를 넘어섰다. 박 대표는 “느렸지만 인지도가 많이 올라가 올해는 매출 80억 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흑자를 낼 수 있는 수준으로 회사가 운영되면서 작년에 받았던 투자금 100억 원가량을 아직 사용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단어뿐만 아니라 문법을 학습할 수 있는 앱도 개발에 착수했다. 이팝소프트는 AI와 게임 기술을 접목해 영어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등도 앱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