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제주 거문오름 용암의 길
오늘부터 제주 용암동굴 축제 개막
비공개 만장굴 구간의 신비
세계자연유산마을 문화체험 풍성

비공개 공간인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벵뒤굴(천연기념물). 제주 세계자연유산 축전 중 탐방이 가능한 미로형 동굴인데, 제주4·3사건 당시 주민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는 북동쪽 해안가로 흘러가면서 벵뒤굴, 김녕굴, 만장굴, 용천동굴 등 수많은 천연 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뜻의 ‘구룡농주(九龍弄珠)’. 여의주에 해당하는 알 명당 쪽으로 9개 산봉우리가 다투듯 둘러싼 형상을 묘사하는 풍수 용어다. 실제로 제주도에는 ‘알(새끼)오름’을 향해 9개 봉우리가 서 있는 지형이 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한라산 백록담보다 무려 4배나 큰 분화구 가운데에 알오름이 치솟아 있는 거문오름은 ‘용이 불을 토해 놓은’ 듯한 화산체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만장굴, 김녕굴 등 세계적인 천연기념물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의 길’을 따라 축제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다.》
○ ‘용암의 길’을 따라 체험하는 용의 기운

9개 봉우리가 가운데 알오름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인 거문오름.

거문오름동굴계에 속하는 용천동굴의 석순과 종유관.
지금 이 용암의 길에서 다양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가 ‘2022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10월 1∼16일). 제주도 세계자연유산마을보존회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하다가 2년 만에 대면 행사로 돌아왔다.
주최 측이 마련한 여러 프로그램 중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불의 숨길’이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생성 전 과정을 직접 걸으며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거문오름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한 ‘시원의 길’(1구간), 용암이 흐르며 빚어낸 거대 협곡인 ‘용암의 길’(2구간), 용암이 굳어 가며 만들어낸 ‘동굴의 길’(3구간), 용암이 바다로 뻗어가며 생성된 ‘돌과 새 생명의 길’(4구간) 등 총 4개 코스(총 26km)로 이뤄져 있다. 용암을 통해 ‘용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9월 초부터 사전 예약(세계유산축전 제주 홈페이지)을 받았는데, 이미 4000명 선에서 예약이 완료됐을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다만 3구간의 평지 일부와 4구간인 ‘돌과 새 생명의 길’(만장굴 주차장∼구좌읍 월정리 구간·6.9km)은 행사 기간 중 제주를 방문한 모든 이들도 참여할 수 있다. 행사 진행자인 강경모 총감독은 “용암이 흘러가면서 협곡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월정리 바다를 만나면서 식어가는 과정과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생활까지 확인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말했다.
세계유산축전 기념식이 열리는 성산일출봉(세계자연유산지구).
○신비한 모습 드러낸 비공개 동굴 구간
거문오름동굴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만장굴(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3입구. 세계유산축전 언론 현장 브리핑에서 취재진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다. ‘만장굴 전 구간 탐험대’에 선발된 12명의 대원만이 축전 기간(15일) 중 탐사할 수 있는 비공개 구간(1, 3구간) 중 일부다. 만장굴의 3입구는 지상에서 15m 정도 아래에 있어 래펠로 내려가야 한다. 해설을 맡은 김상수 운영단장은 “동굴 3입구에 햇빛이 비치면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말했다. 박쥐가 서식하는 구멍과 배설물들을 만나면서 진입한 비공개 구간 동굴의 내부는 바닥과 벽면 곳곳에 용암이 흘러간 흔적이 선명했다. 새끼줄처럼 꼬이거나 거친 물결이 굽이치는 듯한 모습의 용암 흔적, 브이(V)자 협곡처럼 길게 뻗어 있는 동굴 형태 등을 통해 용암류가 어디서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개방하지 않고 있던 김녕굴과 벵뒤굴도 축전 기간 중 열린다. 김녕굴은 모양이 꾸불꾸불하고 뱀과 관련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 ‘사굴’이라고도 불린다. 동굴 입구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고운 모래가 덮여 있는 게 인상적이다. 조개껍데기와 산호가루로 된 모래라고 한다.
벵뒤굴은 용암이 뚫고 갈 곳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미로형 동굴로 손꼽힌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제주4·3사건 때 토벌대를 피하려는 주민들이 이곳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축제 기간 중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마을(세계자연유산마을)에서는 ‘모산이 연못’을 낀 캠핑장에서 ‘기름떡’을 먹으며 제주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구좌읍 김녕리 마을(세계자연유산마을) 해변에서 늦더위를 즐기는 관광객들.
글·사진 제주=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