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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의 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66〉

입력 | 2022-10-01 03:00:00


인간의 공포가/세계를 떠돌고 있다

알 수 있는/사실

비슷한 모양의 빌딩이 줄지어 서 있다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 단지 비슷한 모양의 마음

성내고 있다 사소한 것들/두 손 가득/쓰레기봉투 계단 내려가다 우수수 쏟아지는/냄새나는 것들 주저앉아/도망쳐버릴까/생각했었다.



문 앞에 놓인 허물
끝없이 허물



―최지인(1990∼ )





시집의 네 페이지에 걸쳐 있는 긴 시를, 이렇게 조금만 소개하게 된 점을 독자와 시인에게 사과드린다. 이 작품에는 시대를 한창 걸어 나가야 하는 자의 불안이 가득 담겨 있는데 전체를 읽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전문을 다 읽어도 타인의 심정을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9월의 마지막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의 시절이 수상하기 때문이다. ‘최저의 시’라는 제목부터가 ‘시대를 압축하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먼 옛날 우리가 수렵 채집인이었을 때에는 인간이 세계를 떠돌았다. 그런데 시인은 이제 인간 대신에 ‘인간의 공포가 세계를 떠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진리에 가깝다. 우리는 한 나라, 한 지역, 한 집에 머물러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공포심에 질려 전 세계를 떠돈다. 허리케인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간다더라, 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칠 거라더라, 전쟁의 여파가 우리 일상을 뒤흔들 거라더라. 단단한 콘크리트 대지에 두 발을 딛고 살지만 마음은 모래밭을 거닐 듯 푹푹 꺼진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공고해 보이지만 쓰레기봉투는 쉽게 터진다.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고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럴 때 시인은 허물어진다고 표현한다.

전쟁은, 기후는, 심성은, 사회는, 안전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불안은 곳곳을 헤맨다. 지금 여기가 최저이고, 더 깊은 최저는 없기를 바란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