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공포가/세계를 떠돌고 있다
알 수 있는/사실
비슷한 모양의 빌딩이 줄지어 서 있다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 단지 비슷한 모양의 마음
…
문 앞에 놓인 허물
끝없이 허물
―최지인(1990∼ )
먼 옛날 우리가 수렵 채집인이었을 때에는 인간이 세계를 떠돌았다. 그런데 시인은 이제 인간 대신에 ‘인간의 공포가 세계를 떠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진리에 가깝다. 우리는 한 나라, 한 지역, 한 집에 머물러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공포심에 질려 전 세계를 떠돈다. 허리케인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간다더라, 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칠 거라더라, 전쟁의 여파가 우리 일상을 뒤흔들 거라더라. 단단한 콘크리트 대지에 두 발을 딛고 살지만 마음은 모래밭을 거닐 듯 푹푹 꺼진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공고해 보이지만 쓰레기봉투는 쉽게 터진다.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고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럴 때 시인은 허물어진다고 표현한다.
전쟁은, 기후는, 심성은, 사회는, 안전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불안은 곳곳을 헤맨다. 지금 여기가 최저이고, 더 깊은 최저는 없기를 바란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