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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계 정제마진 ‘0’… 유가하락-강달러에 휘청

입력 | 2022-10-04 03:00:00

배럴당 0달러… 2년만에 최저수준
6월엔 29달러 넘어 최대호황 누려
하반기 영업익 절반 가까이 줄 듯
전문가 “운임비도 크게 올라 이중고”




올해 상반기(1∼6월) 고(高)유가로 사상 최대 이익을 냈던 국내 정유업계가 유가 하락과 달러화 강세로 고전하고 있다. 정유사들의 실적 지표인 정제마진이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며 하반기(7∼12월) 이익은 상반기 수준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9월 셋째 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0달러를 기록했다. 납사(나프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비, 수송비 등을 제외했을 때 남는 돈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2020년 9월 둘째 주에 기록한 ―0.1달러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업계는 정유 사업을 하는 데 드는 운영비, 인건비 등을 감안했을 때 정제마진이 4∼5달러는 돼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설명하고 있다.

6월 넷째 주만 해도 정제마진이 29.5달러까지 오르며 역대급 호황을 누리던 모습과는 대비된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S-Oil),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15.9% 증가한 12조3203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반기 영업이익은 상반기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하반기 영업이익 합계액이 상반기보다 43% 감소한 3조9876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반기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유가 하락이다. 국내 수입원유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올해 초 배럴당 120달러대까지 올랐다가 9월 27일 하반기 최저치인 84.25달러까지 떨어졌다. 정유회사들은 2∼3개월 시차를 두고 원유를 사들이는데, 유가가 오를 때는 원재료를 과거에 싸게 산 셈이 돼 이익이 되지만 반대로 떨어질 땐 비싸게 산 꼴이 돼 손실이 발생한다.

달러화 강세도 정유회사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원유 매입 비용을 키우기 때문이다. 또 정유사들은 자금 융통을 위해 원유 매입 대금을 일정 기간 유예했다가 추후 지급한다. 이때 환율은 지급 시점 기준으로 적용해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에 따른 석유 제품 수요 감소까지 더해지며 정제마진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9월 월간 보고서에서 “중국 추가 봉쇄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비 감소로 석유 수요가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업계는 정제마진 부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여전한 데다 원유 운임비 강세와 중국발 공급 확대 등 부정적인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동북아시아로 향하는 원유 운임비는 2분기(4∼6월) 1.3달러에서 9월 3달러로 급등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최근 “정부가 정제유 수출 쿼터를 1000만∼1500만 t 늘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존에 계획했던 2250만 t에서 약 50% 확대하는 것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유업계가 운임 상승과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정제마진 압박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정제마진 조정은 수요 파괴에 대한 불안감을 과도하게 반영한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반등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연구원은 또 “국제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계획과 미국의 비축유 방출 축소를 감안하면 악재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5일 회의에서 하루 100만 배럴 이상 감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최대 규모로 전 세계 공급량의 1%를 넘는 수준이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