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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성열]노동법 근간 뒤흔드는 노란봉투법의 두 조항

입력 | 2022-10-04 03:00:00

유성열 사회부 차장


“노동법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 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두고 “손해배상·가압류 제한보다 더 심각한 조항이 있다”고 했다. 그는 “노동법의 근간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체결한 근로계약인데,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확장하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며 “이런 조항까지 패키지로 통과되면 노동시장 전반의 혼란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참여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안이다. 2014년 법원이 쌍용자동차 파업 노조원들에게 4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한 시민이 4만7000원의 성금을 노란 봉투에 담아 전달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기업이 파업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경우 근로자의 삶이 파탄 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란봉투법은 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는데, ‘불법 파업 면책법’이란 비판을 받으며 통과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가 올 6∼7월 점거파업을 벌이면서 다시 쟁점화됐다. 대우조선이 하청지회 간부 5명을 상대로 47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자 노동계와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노란봉투법을 다시 추진하고 나선 것. 정의당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엔 더불어민주당 의원 46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고,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7대 입법과제에 포함시켜 연내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개정안은 노조가 폭력을 동원하거나 사내 시설 등을 파괴했을 경우를 제외하곤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했다. 대우조선 하청지회처럼 ‘비폭력 점거 파업’으로 기업 운영을 마비시켰을 때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이 입증되더라도 시행령이 정한 상한액까지만 배상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데 이 개정안에는 손해배상 제한 관련 내용뿐 아니라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대폭 넓히는 조항(2조 1, 2항)도 담겨 있다.

시행령으로 근로자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까지 사용자로 인정토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하청 근로자도 원청회사의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원청은 이들의 ‘사용자’로서 교섭 의무를 갖게 된다. 대우조선 하청지회 근로자들의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하청업체가 아니라 원청인 대우조선이 되는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이 지나치게 넓어져 노사관계가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선업 등 일부 제조업은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하청 근로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고 일하는 환경까지 위험하다 보니 청년과 중장년층 모두 기피한다. 제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라도 하청 근로자의 처우는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노사관계를 새롭게 규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노동시장 전체에 극심한 혼란이 올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숙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