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국정감사] 국회, 기업에 부당한 압박 여전 “질문 내용 알아서 짜오라” 요구도 기업들, 식사배달 등 읍소 경쟁
2022년도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에서 관계자가 여야 의원 자리에 국감 자료를 올려 놓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기업의 국회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A 씨는 최근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4일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준비하던 국회 한 보좌진이 기업의 매출 세부내역 등 공시되지 않은 영업 기밀 자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보안상 제출이 어려운 점을 설명했지만 의원실에서는 “자료를 주지 않으면 회사 대표를 증인으로 부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A 씨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대표급 인사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A 씨는 “심지어 경쟁 업체를 공격할 내용을 달라면서, 안 주면 대표를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은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기간 여의도에서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룹 총수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증인으로 채택되면 ‘호통 국감’의 희생양이 되거나 질문 하나 받지 못하고 하루 종일 ‘병풍’ 역할만 하다 돌아오기 일쑤기 때문이다.
10대 그룹 한 계열사 대관 담당 B 씨는 “실무자 차원에서 답변 가능한 내용도 처음에는 총수를 증인으로 요구해 왔다”며 “대표나 임원으로 레벨을 다운하는 조건으로 지역구에 작은 사업이라도 발주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국회 보좌관 출신을 대거 영입하는 등 ‘총수·대표 증인 출석 막기’에 나서고 있다. 국회 보좌관 D 씨는 “최근 기업이 국회 보좌진을 많이 뽑은 건 사실상 인맥을 활용해 총수·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되지 못하도록 읍소하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감을 앞두고 의원실에 간식을 사가거나 식사를 배달시키는 경쟁은 이미 6, 7월부터 불붙는다고 한다.
국감이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지역 민원을 해결하거나 국회의원의 인지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좌관 출신의 금융기업 대관 담당자 E 씨는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감사 본래 취지에 맞도록 기업 체질 개선과 산업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