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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감세 유턴에도 예산 폭탄 ‘재깍재깍’…재정우위 위험

입력 | 2022-10-04 15:54:00


영국 정부가 부자 감세에서 한 발짝 물러섰지만 아직도 예산폭탄이 재깍거리고 있다. 대규모 감세정책을 위한 자금을 어떻게 확보할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점에서 국가재정에 대한 신뢰를 되찾으려면 갈 길이 멀다.

로이터는 3일(현지시간) ‘영국의 세금정책이 일부 선회했지만 아직도 예산폭탄이 재깍이고 있다’며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예산관리의 명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제성장 계획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란은행 독립성 상실 위험

현재 영국 금융시장의 상황은 지난주보다 훨씬 좋아졌다.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지난달 23일 감세를 포함한 ‘미니예산’을 공개했고 영국 파운드화는 미 달러 대비 사상 최저로 붕괴하고 영국 국채(길트)도 추락했다.

파운드 붕괴로 글로벌 금융시장까지 휘청이면서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은 결국 2주간 장기국채 매입을 통한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이어 3일 정부가 초고소득층의 소득세율 낮추기로 했던 계획을 폐기하기로 결정하면서 파운드와 국채금리는 반등했다.

하지만 영국이 성장 촉진을 위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심은 여전하다.

라보방크의 제인 폴리 외환 및 금리전략 본부장은 로이터에 “영란은행의 긴급조치들이 끝나는 몇 주 안에 정답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을 매입하는 영란은행의 임시 개입은 이달 14일로 끝난다. 폴리 본부장은 “영국 자산, 파운드, 길트는 아직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장밋빛 성장계획은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역부족이라는 점을 리즈 트러스 총리와 콰텡 재무장관이 인정하지 않으면 영국 금융시장은 또 다시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우려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길트의 심각한 기능장애가 재발하면 40년 만에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는 영란은행이 역설적이게도 계속 채권을 매입해 인플레이션을 더 끌어 올릴 위험이 커진다.

이는 전면적 ‘재정정책 우위(fiscal dominance)’라는 가능성을 열어 젖히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들은 우려했다. 재정정책 우위란 인플레이션 통제라는 목표를 가진 중앙은행이 재정당국에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에 종속되는 상황을 의미하며 이는 투자자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것이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정책적 독립성을 상실하고 재정당국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무어고든 증권의 사이먼 프렌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니예산에서 세금이 변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에 앞선 제도적 ‘초토화 정책(scorched earth policy)’이 문제다. 이 문제가 해결될 경우에만 영국의 리스크 프리미엄(위험 수익)이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 재정신뢰 회복 미지수…14일 긴급 채권매입 종료

트루스 총리는 영국 금융시장의 붕괴가 글로벌 시장 불안 탓이라고 반박한다. 물론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라 많은 국채의 가격(수익률과 반대)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길트 약세는 두드러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10년 만기 길트 가격은 1957년 이후 최대 월간 낙폭을 그리며 떨어졌다. 주요 7개국(G7) 중에서도 가장 많이 떨어졌다.

트루스 정권이 감세에 대해 다소 후퇴했지만 재정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이코노미스트들은 입을 모은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의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들은 “트루스 정부의 재정 접근법과 관련해 전반적 변화라는 신호로 읽힐지가 최대 의문”이라며 “아직 시장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 안정에 실패하면 영란은행에 가해질 압박은 더욱 커질 위험이다. 이달 14일 영란은행은 길트 발작에 따른 임시 채권매입을 종료할 예정이다.

씽크탱크 체인징유럽의 조나단 포테스 시니어 펠로우는 “영란은행이 재정우위에 저항하고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를 고수한다면 파운드는 안정화하겠지만 비용은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란은행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 감세의 비용을 개인과 기업이 떠맡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란은행이 재정우위에 저항하지 않으면 파운드는 계속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은 더 높은 수준에서 더 오래 갈 것이고 이는 영국의 투자매력을 계속해서 떨어 뜨릴 것이라고 포테스 펠로우는 우려했다. 그는 “또 다시 우리는 모든 가격을 지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