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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Special Report]“회사가 윤리 의식 키우는 실험실 돼야 횡령 예방”

입력 | 2022-10-05 03:00:00

조직윤리 전문가 마리암 코우차키 교수가 말하는 대규모 횡령 해법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는 횡령 사건들이 연이어 보도되며 온 나라가 큰 충격에 빠졌다. 우리은행에서는 한 직원이 8년 동안 8차례에 걸쳐 약 707억 원을 횡령했으나 회사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공분을 샀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내부 통제가 작동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지만 주원인으로는 ‘개인의 일탈’을 꼽았다. 그러나 연이은 대규모 횡령 사건들을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자본 시장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 개인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조직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

윤리적 조직문화 전문가인 마리암 코우차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사진)는 “직원들의 윤리 교육은 가정과 학교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회사가 직원들의 ‘윤리적 실험실’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DBR가 코우차키 교수에게 직원들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회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2년 9월 2호(353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직원들의 비윤리적 행동에 특히 취약한 조직이 있나.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부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약 90명의 사람을 5명 또는 25명씩 한 방에 배정해 10개의 퍼즐을 풀도록 했다. 이때 7번째 퍼즐은 풀 수 없도록 설계됐다. 5명이 있는 방에서 7번째 문제를 풀었다고 보고한 참가자는 27%였지만 25명 방에서는 54%에 달했다. 이후 약 300명의 참가자를 100명, 또는 10명 그룹으로 나눠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100명 그룹의 사람이 10명 그룹의 사람들보다 부정행위가 규범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집단이 클수록 부정행위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더 잘 형성된 것이다. 한편 은행 직원들이 부정행위에 대체로 관대하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되기도 했다.”

―수차례에 걸쳐 횡령을 저지른 직원들도 있다.

“나쁜 행동은 한 번 시작되면 끊기 어려우며 습관으로 굳어지기 일쑤다.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부정행위를 쉽게 잊는 ‘비윤리적 기억상실’ 경향을 갖고 있다. 293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자신의 부정행위를 떠올린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인격적이고 자기 통제력이 부족하며 충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이후 진행된 과제 수행 실험에서도 더 많은 속임수를 저질렀다. 본래 본인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더 심각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대규모 횡령 사건 역시 아주 사소한 부정행위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비윤리적 행동의 악순환은 어떻게 끊어내야 하나.

“성찰의 기회가 주기적으로 주어져야 더 큰 나쁜 행동을 막을 수 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성과에 대한 피드백 세션을 진행하듯이 윤리적 측면에서도 피드백이 주어져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우리 회사의 윤리적 가치와 부합하는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는지’ 등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람들이 비윤리적 행동에 취약한 상황이 있는가.

“심리적으로 고갈 상태일 때 비윤리적 일탈에 빠지기 쉽다. 자기 통제를 위해서는 인지적 자원이 필요하다. 오전보다 오후에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20∼50% 늘어난다. 오전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오후에 진이 빠졌기 때문이다. 심리적 고갈 상태에 빠진 타인의 비윤리적 행동을 더 쉽게 묵인하기도 한다. 이들 역시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고의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에 관리자들은 과로한 직원이 결산, 보고서 작업 등을 해야 할 때 잠시라도 휴식하도록 권해야 한다. 회사 내 충분한 휴게 공간을 마련하거나 낮잠 시간을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직원의 비윤리적 행위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한다.

“사람들은 윤리적 규범에 대한 학습이 가정과 학교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하며 회사를 윤리적 규범을 배우는 장소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회사만큼 사람들이 윤리적 딜레마에 시달리는 장소는 많지 않다. 성과를 부풀리거나 거짓으로 경비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도 마주한다. 회사는 직원들의 부정을 직원 개인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회사를 윤리 의식을 학습하는 실험실로 만드는 조직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윤리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까.

“기업 문화 전반에 윤리를 통합해야 한다. 면접에 윤리 관련 질문을 넣고, 입사 후 적응 기간에 회사가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프로젝트에 들어가기에 앞서 윤리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는 사전 성찰도 효과적이다. ‘내가 한 선택이 내일 신문 1면에 나와도 괜찮은가?’ ‘모두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이 선택을 하고 거울을 보면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질까?’와 같은 질문들을 자문해 보는 것도 성찰에 도움이 된다.”



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