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에도 거침없이 공공요금 올리면서 尹 섣부른 공약 위해 막대한 예산까지 물가만큼 임금 오르면 문제없다는 듯… 사실상 인플레 방치하는 것 같아 걱정
송평인 논설위원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 물가상승률 5∼6%는 체감보다 훨씬 낮다. 서울 도심에서 1만 원 이하 점심을 먹기도 쉽지 않아졌지만 그나마 8000원짜리는 9000원으로 12.5%, 9000원짜리는 1만 원으로 11% 올랐다. 소주 값은 대부분 식당에서 병당 4000원에서 5000원으로 25% 올랐다. 국민 과자 값은 소매점 기준으로 새우깡이 1300원에서 1400원으로 7.6%, 꽃게랑이 1500원에서 1700원으로 13.3% 올랐다.
휘발유·경유 가격은 내가 사는 동네 기준으로 각각 L당 1600원대, 1700원대다. 여전히 둘 다 높은 수준이지만 한때 2000원을 상회하다가 떨어졌다. 무 등 채소 값도 기후 요인으로 높아졌지만 곧 다소 떨어질 것이다. 기름 값이나 채소 값은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나 한번 오른 밥값, 술값, 과자 값은 좀처럼 다시 내리지 않는다. 이 밖에도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 더 중요한 품목이 많다. 이런 근원 물가가 체감으로 10% 정도 올랐다. 연봉 5000만 원 월급쟁이 기준으로 약 500만 원의 소득이 영구히 감소한 것이다.
정부는 이달부터 적용하는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과 가정용 전기 요금을 가구당 평균 월 5400원, 2270원씩 올렸다. 각각 15.9%, 5.1% 인상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올 3번째로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18% 인상이다. 올 들어 급격한 해외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인상분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때 올리지 않은 것까지 한꺼번에 올리는 건 악덕 기업주가 장마철에 하수구로 폐수를 쏟아내는 것처럼 고약한 짓이다.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은 올해 82만 원만 해도 이미 다른 징병제 국가보다 많고 병사 월급이 커질수록 초급 간부와의 격차가 적어져 우수 간부 충원이 힘들어지는 자해(自害)성 공약이다. 정부는 출산 휴직자에게 법으로 정해진 월급 100%가 지급되도록 힘써야 하지만 출산 첫해 별도의 부모급여로 1200만 원을 주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들고 비용 대비 효과도 의심스러운 공약이다. 국민연금과 연계되지 않은 노인기초연금 인상은 국민연금 가입 의지를 꺾는 대(大)재앙이 될 수 있다. 청와대 광화문 이전처럼 충분한 검토가 없었던 섣부른 공약에 돈을 퍼부으면서 적자를 핑계로 공공요금은 거리낌 없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관리하기는커녕 사실상 방치하는 물가로 인해 내년 각 기업에서 임금인상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경제학 법칙에 따르면 결국 물가상승분은 시기적으로 지체되지만 임금인상분으로 보충되면서 물가의 뉴노멀이 형성된다. 그때 궁극적 피해자는 자산 없는 현금보유자, 주로 세입자다.
집 한 채 가진 사람에게는 집값은 오르나 내리나 큰 의미가 없다. 내 집이 오르면 다른 집도 오르고 내 집이 내리면 다른 집도 내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집값이 정점에서 40%가량은 떨어져야 집값이 비정상적 상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만큼 떨어질지도 의문이지만 집은 자산이므로 집값은 아무리 내려도 최소한 물가상승분을 반영한다.
그러나 물가가 10% 오르면 5억 원 전세를 사는 사람은 전세를 갱신할 때 수중에 고작 4억5000만 원을 쥐는 셈이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벼락거지가 된 세입자는 그나마 가진 돈의 가치마저 잃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끝났을 때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물가를 억제하는 데 최우선을 두어야 하는데도 정부가 그러고 있는지 의문이다. 말로는 비상 경제시국 운운하면서도 대통령의 나쁜 공약을 지키는 데 매달리고, 말로는 물가 안정 운운하지만 물가와 임금이 다 높아진 나쁜 뉴노멀을 막아볼 생각도 없이 방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