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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근형]방만 헬스장 방치하고 비리 직원 방관한 건보공단

입력 | 2022-10-05 03:00:00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 씨는 같은 건물 7층을 지나칠 때마다 화가 치민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건강증진센터’라는 이름의 체육시설인데, 한눈에 봐도 ‘세금 먹는 하마’라는 것이다. A 씨는 “월 임대료가 최소 3000만 원 정도 하는 곳인데 가끔 노인들만 보인다”며 “인근에 헬스클럽이 십수 개인데, 직장인 밀집지역인 강남역에 저런 시설이 왜 필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니 의아한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이 같은 시설을 전국에 20개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도심지라 체육시설이 부족하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다 보니 이용률이 극히 낮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20개 센터에 신규 등록한 사람은 3726명에 불과하다. 센터 1곳당 하루에 0.8명이 등록한 꼴이다. 체력 측정과 운동 지도는 하루 5.8건, 영양 상담은 하루 2.1건 등 일평균 이용이 8건에 불과했다. 사설 헬스장이었다면 문을 닫았어야 할 수준이다.

하지만 센터마다 정규직 직원 4명이 상주하고 있다. 직원 한 명당 하루 2명가량만 상대하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 센터는 필요에 따라 계약직 직원까지 추가로 채용했다. 올해 전체 사업 예산은 20억 원, 추가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최소 40억 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이 의원은 예상했다. 건보공단의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공단이 직접 국민 건강을 관리해 건보료 지출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인데, 효과성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건보공단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면 ‘방만 헬스장’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재인 케어 시행 등의 여파로 건보 적립금은 약 18조 원(4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2조 원 가까이 줄었다. 2029년 적립금이 전액 소진되고 2040년 누적 적자가 약 678조 원에 이른다는 전망도 있다.

특히 국민 부담은 늘고 혜택은 줄고 있다. 내년 건강보험료율은 최초로 7%를 넘어서게 된다. 반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에 대한 국민 부담은 지난 정부 때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국민 모두 건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상황에서 건보공단만 방만 사업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방만 헬스장’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던 ‘46억 원 횡령 사건’만 봐도 그렇다. 채권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건보공단 직원 최모 씨가 올해 4∼9월 약 46억 원을 횡령하다 지난달 22일 적발됐다. 건보공단은 5개월간 비리 직원을 사실상 방관했다. 4∼7월 사이 1억 원가량을 빼돌리던 직원이 9월 들어 훨씬 큰 액수에 욕심낸 건 느슨한 조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심지어 공단은 횡령을 적발한 다음 날에도 최 씨의 월급 444만 원을 전액 지불하는 안일함을 보였다.

초고령화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향후 폭발적으로 늘어날 국민 의료비의 효율적 지원과 통제를 이런 조직에 맡길 수는 없다. 썩은 곳은 도려내고, 비대한 곳은 쳐내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