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속편 전성시대’
한산
김재희 문화부 기자
《‘소포모어 징크스.’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신입생 때의 열의가 떨어져 성적이 부진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영화계에서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속설을 말할 때도 쓴다. 525만 관객을 모은 ‘조폭 마누라’(2001년)는 2003년 ‘조폭마누라2’(158만 명), 2006년 ‘조폭마누라3’(146만 명)까지 속편을 낳았지만 흥행엔 실패했다. ‘전지현 신드롬’을 일으킨 ‘엽기적인 그녀’(2001년)도 비슷했다. 전작 주연 차태현과 걸그룹 에프엑스의 리더 빅토리아를 내세워 15년 만에 ‘엽기적인 그녀2’를 선보였지만 관객 수 7만7000명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주유소 습격사건2’(2010년) ‘몽정기2’(2005년) ‘친구2’(2013년) 등 전작의 영광을 보지 못한 속편이 대다수였다.》
탑건: 매버릭
○ “둘이 티켓 값만 5만 원…예상 가능한 즐거움 선택”
올해 속편 영화가 유독 큰 인기를 끈 데는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19로 극장 방문객이 급감하면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가 티켓 가격을 올렸다. 코로나19 대유행 전 주중 1만 원, 주말 1만1000원이었던 일반관 티켓 가격은 올해 상반기 주중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으로 올랐다. 가격 부담이 커지자 관객들은 영화를 고를 때 모험을 하기보다는 재미가 보장되는 작품을 선택하게 된 것. 한 영화사 배급팀장은 “주말에 연인이 극장에서 데이트를 할 때 두 명 티켓 값에 팝콘까지 먹으면 5만 원가량이 든다”며 “많은 돈과 시간이 투입되기에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기존에 알던 내용, 익숙한 캐릭터가 나오는 속편을 선택하는 경향이 굳어졌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기간에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영화적 시리즈물’을 많이 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인기를 끌었던 ‘D.P.’(한준희 감독) ‘지옥’(연상호 감독) ‘오징어게임’(황동혁 감독) 모두 영화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안숭범 영화평론가는 “최근 OTT 시리즈물에서 영화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OTT 시리즈물은 사실상 러닝타임이 길어진 영화”라며 “사람들이 긴 호흡의 이야기를 쉽게 소화하게 됐고, 좋아하는 캐릭터와 갈등 구조를 반복해 보는 패턴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2022 속편 흥행공식’은 세계관 확장
17년 전 ‘속편 전성시대’와 현재의 차이는 ‘기획된 속편인가’ 여부다.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17년 전에는 전편이 대박을 터뜨리면 속편을 기획했다. 지금은 세계관을 설정하고 프리퀄(본편보다 앞선 이야기)과 시퀄(본편 이후의 이야기), 스핀오프(원작의 캐릭터나 상황에 기초해 만든 파생 작품) 등 세계관을 확장한 구조가 정착되면서 본편과 속편을 함께 기획하고 있다. 새 캐릭터나 반전 없이 전편을 그대로 복사하는 식의 속편을 만드는 패착을 줄인 것이다.
범죄도시2
○ ‘신과 함께 3·4’, ‘범죄도시3’까지… ‘속편 전성시대’
영화계는 속편 제작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동석이 1, 2편에 이어 주연과 제작을 맡는 ‘범죄도시3’는 범죄도시2 개봉 중 촬영에 들어갔다. 1, 2편 모두 1000만 관객을 넘긴 ‘신과 함께’의 3, 4편도 현재 제작 중이다. 2015년 제작비 90억 원으로 1341만 명을 모은 ‘베테랑’의 속편도 제작에 들어갔다.
다만, 탄탄한 서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빠진 세계관 확장은 경계해야 한다. ‘강철비1’(2017년)의 속편 ‘강철비2: 정상회담’(2020년), ‘역학 3부작’으로 기획된 ‘관상’(2013년)의 속편 ‘궁합’(2018년)과 ‘명당’(2018년)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김홍백 대표는 “성공한 오리지널 이야기를 이어 나가 시리즈로 만드는 ‘프랜차이즈화’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속편을 잘 못 만들면 1편까지도 평가절하될 수 있다”며 “전편의 ‘톤 앤드 매너’를 유지하면서도 재미와 완성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재희 문화부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