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너무 못 참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내 아이가 너무 참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있다. 내 아이의 ‘감정주머니’이다. 아이 안에는 여러 개의 주머니가 있다. 인지능력, 운동능력, 사회성, 언어능력, 감정, 창의성…. 타고나기를 ‘인지능력’이라는 주머니가 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이해력이 좋다. ‘운동능력’이라는 주머니가 큰 아이들은 금세 배우고 금세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한다. ‘사회성’이라는 주머니가 큰 아이는 사교 기술이 좋아서 금방 사람을 사귄다. 그런데 큰 주머니가 있으면, 어떤 주머니는 좀 작을 수 있다. 그것이 ‘감정주머니’일 때, 아이는 잘 참지 못하고 화를 잘 내는 아이로 보일 수 있다.
감정주머니는 약간이라도 강하고, 과하고, 불편한 감정을 담아두는 역할을 한다. 담겨진 감정은 담고 있는 동안 삭여지기도 하고, 녹아 없어지기도 한다. 감정적인 것은 김치를 숙성시키듯 자신 안에 좀 담고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은 식히고, 지나치게 차가운 감정은 미지근하게 자신 안에서 만들어줘야 한다. 감정주머니가 작으면 그럴 겨를이 없다. 조그만 담겨도 쉽게 넘친다. 그때 아이가 보이는 반응은 “으앙!” 하고 울어버리거나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감정주머니 중에서도 불편한 감정을 담는 주머니가 유난히 작아진 아이들이다. 아주 좋은 감정을 담는 주머니가 작은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기분이 좋으면 소리를 지르고, 큰 소리로 웃고, 방방 뛰고 난리법석이다. 좋은 감정을 주체 못 하는 것이다. 불편한 감정의 주머니든, 좋은 감정의 주머니든 연령에 맞게 감정주머니를 키워나가지 못하면, 또래들에 비해 감정을 잘 다뤄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아이의 감정주머니가 작은 이유는 질환적인 것을 빼고, 대부분 부모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감당해낼 기회를 별로 주지 않는 탓이 많다. 아이를 카시트에 앉아 있게 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주 어릴 때는 의외로 카시트에 잘 앉아 있는다. 그런데 두 돌 정도 되면 카시트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전까지는 잘 앉아 있던 아이가 카시트에서 빼 달라고 버둥거리며 울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계속 두면 5분, 10분, 15분 시간이 흐르면서 카시트 때문에 불편한 신체 느낌이 몸에 익는다. 그러면 좀 괜찮아진다. 그럴 때 아이가 불쌍해서 빼내줘 버리면, 아이는 ‘약간 불편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익숙해지는 경험’을 할 기회를 잃는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누군가와 긴한 이야기를 해야 할 상황이다.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나가자. 나가자. 아∼∼ 앙∼∼” 하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그럴 때 아이가 참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분명한 지침을 주어야 한다. “네가 불편한 것은 알겠는데, 찡찡거린다고 해서 지금 상황에서는 나갈 수 없는 거야. 이야기가 다 끝나야 나갈 수 있어. 좀 기다려”라고 말한다. 아직 기다리는 것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아이는, 잠시 조용했다가 또 찡찡댈 것이다. “엄마∼ 나가자∼∼” 그럴 때, 다시 “기다려”라고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렇게 하면 아이의 찡찡대는 간격이 조금씩 길어진다. 그만큼 지루한 시간을 참아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이 몸에 밴 것이다. ‘감정주머니’가 조금 커진 것이다.
아이가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색연필 좀 줄 테니까 그동안에 그림 좀 그리고 있을래?”라고 대안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아이가 그 상황이 좀 익숙해지면, 감당해내는 능력이 조금 더 생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금세 들어줘버리면, 아이는 금방 편해진다. 그렇게 되면 ‘감정주머니’는 조금도 커질 수 없다. 그리고 늘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아이를 편하게 만들어버리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언제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